호문쿨루스.12
카테고리 만화 > SF/판타지
지은이 YAMAMOTO HIDEO (대원씨아이(주),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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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쿨루스에 대해서는 그 전에도 포스팅이 있습니다만
최근 신간을 보고 나서 다시 한번 확신이 강해져서 분명히 쓰고 싶었습니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 한 가지.

 "호문쿨루스는 은유적으로 임상심리학을 전달하고 있는 만화"

임상심리? 뭘까요? 거기 전공자들 손 내리구요.
일반인들이 알기에는 너무 낯설고 어려운 '임상심리학'. 현실에서 상당히 동떨어진 느낌이죠...
심리치료사 상담심리사 이러면 무슨 일을 하는지 왠지 얼핏 느낌이 오니까 아~ 하겠는데...

지극히 제 주관적 견해라는 사견을 전제로 하고, 만화를 읽었던 분들에게 논설문을 좀 펼쳐보자면...
제가 볼 때ㅡ 호문쿨루스 주인공 니코시가 겪는 스토리가, '임상심리학자'가 하는 일의 본질이자 인생의 핵심 테마와 거의 일맥상통합니다.

'호문쿨루스'는 겉보기에는 매우 비과학적인 오컬트를 다룬 만화처럼 보이고, 또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SF처럼 보이는 만화지만, 보면 볼 수록 이 만화가 그려내는 이야기가 공상 속의 판타지를 주제로 한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고찰'을 다룬 것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뭐 모든 만화가, 모든 문화가 인간을 다루고 있지만요.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점이라면, 만화 속의 이야기가 전반적인 인간성을 다룬 게 아니라 특정 유형의 '병리적 인격'을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호문쿨루스'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상징적'으로 묘사하면서 말이죠. '임상심리학'이 심리적,정신적,정서적 질병을 다루고 있는 것임을 안다면, 왜 제가 이런 주장을 하는지도 금방 이해 되시겠죠.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다른 심리학적 만화인 '사이코닥터'나 '어둠의 임상심리사'보다 이쪽이 훨씬 임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만약 '임상심리학'을 다룬 만화를 추천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이 호문쿨루스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이코닥터'나 '어둠의 임상심리사'는 기본적으로 추리만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정신분석적 상징화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너무 빠르게 전개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정신분석이라서 무작정 싫다는 게 아니고, 정신분석 자체가 오랜시간 공 들여서 무의식의 의식화를 이루는 과정인데, 만화에서는 너무 쉽게 통찰이 이뤄지고 큰 저항없이 의식화가 되어버리며 순식간에 사람이 행복하게 바뀌어 버립니다. 그런 정신분석 기법이 있었다면 심리치료 시장은 정신분석이 제패했을 겁니다. 이야기에서 정신분석을 추가함으로 개연성을 이끌어내고 있으나, 실제로는 만화 속의 정신분석적 과정 자체가 현실의 정신분석치료와 동떨어져 있다는 게 제 요지입니다. '사이코닥터'를 통해 정신분석 사례를 경험하는 것은 '역전재판'을 통해서 법률 사례를 배우겠다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추가로, 가끔 무섭기도 해요. 제가 볼 때, 사이코 닥터에서 해피엔딩으로 에피소드를 끝내는 주인공의 시선이, 혼이 빠져 버린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아무튼 심리학, 특히 임상 or 상담 쪽 학문을 어느 정도 배웠고, 이야기에 대한 분석 능력을 어느 정도 보유한 심리학자라면, 이 만화가 임상심리학적 관점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거라 생각하는데요. 서두가 너무 길어지고 있으니 일단 제 주장 속으로 들어가보죠.

1. 작가의 전작들
- 다른 작품들이 더 있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확인한 것은 '고로시야 이치'와 '엿보기 가게'입니다.
'신 엿보기 가게(nozokiya)는 다소 알려져 있지 않은 만화로 정발이 되지 않아 저도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접했습니다. 사실 나온지 너무 오래된 만화이고 그림체로는 같은 작가인지 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는 이 작가의 만화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시놉시스와 소재입니다. 제가 일본어를 잘 몰라서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관음증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관음증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보통 '딸기 100%'  같은 일본 만화처럼 경우 극단적인 속옷 노출이 주요 세일즈 포인트로 하며 독자들의 관음 욕구를 충족시키는 만화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가의 만화에는 노출은 있으나 독자들의 관음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관음증이라는 주제도 팔아먹기 위해 선정된 주제가 아닙니다. 

'고로시야 이치'는 고어무비로 유명한 '이치 더 킬러'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는 만화입니다. (스포일러 있음) 
영화만 보면 사이코패스 살인범 '이치'를 중심으로 한 피칠갑 잔혹 살인극으로만 생각될 수 있는데, 이는 이치의 개인적 일화가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만화를 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물론 만화도 성인용으로 매우 잔인한 묘사들이 있으며 여태 정발로 나오지도 못한 이유가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원작 '고로시야 이치'는 주로 주인공 '이치'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지, 트라우마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떤 외상적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지, 어떤 방식으로 조종당하는지가 중요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화와 비교해 만화 속의 이치는 단순한 울보가 아니고, 외상과 뒤섞여 삐뚤어져 있는 주관적 현실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로시야 이치에서 강조되는 주제는 폭력과 섹스, 사디즘과 매저키즘 입니다. 만화로만 보면 DSM-IV의 변태 성욕에 해당되는 행위들이겠습니다.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강조된 부분은 사디즘과 매저키즘이겠죠. 영화는 시각적으로 그 부분을 강조했으며 원작에서도 살인과 섹스는 극한의 가학성으로 그려지지만, 영화보다 원작은 폭력성이나 선정성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선혈이 낭자한 장면을 보여주기만 하는 영화와 달리 만화에서는 그 가학성과 피학성의 상징적 이유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설명'이 아니라 나열이요.).  '이치'라는,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살인기계'가 어떤 결과를 맺느냐를 연출한 드라마인거죠.
이 정도로만 봤을 때도, 작가의 임상심리학적 관심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2. 인상
사실 제가 '호문쿨루스'란 만화를 임상심리학적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보게 된 것은 제 경험이 가장 큽니다.

얼마 전에 한 환자의 인물화 검사를 해석하면서, 갑자기 떠오른 게 호문쿨루스였습니다. 그것을 그린 환자는 매우 유약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이었으며, 불안하고 초조해 하며 억압되어 있는 인상을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격장애로 분류하자면 C군으로 보이는 사람이었죠. 

그림은 나름 성의를 기울여 열심히 그려진 것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그림 실력의 부족으로 부적절하게 묘사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 된 것인지 그 그림을 보면 볼수록 회피하고 싶을 정도로 기괴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이토준지' 만화에 나오는 듯한 괴기스런 형상이었죠. 

그렇다면 그 그림이 그 자신의 무의식을 투영한 호문쿨루스일까요? 물론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그  자신일수도 있지만, 만화 호문쿨루스에서도 나오듯이 "자신의 눈을 통해 본 다른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심리 평가 결과들은 그 환자가 paranoid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여러 sign들이 나타났습니다. 저로써는 제게 보여주었던 인상과 다른 평가 결과들에 당황스러웠었죠. 그런데 실제로 제가 겉으로 받았던 인상과 다르게, 다르게 병동 내에서 이 환자는 다른 환자들을 뒤에서 조종하였으며, 간호사들에게 은근히 요구를 드러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요구사항은 자신의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었죠. 담당의와 이야기를 해보니 겉으로 유약해보이고 순응적인 아버지로 보이기만 했던 그 환자는, 사실은 가족들에게 폭력을 일삼고 극단적인 행동을 오갔던 환자였습니다. 심리평가 sign보다 제 인상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그 뒤로 많이 사라졌죠. 

3. 내용
암튼 임상심리학회 홈페이지에 가보시면 임상심리학자가 하는 일이 '연구, 치료, 평가, 교육, 자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럼 호문쿨루스라는 만화에서, 저 중에서 어떤 일이 해당되는 걸까요?
제가 볼 때는 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고 인상적인 부분, 즉 '평가'와 '치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라고 쓰고는 몇 개월째 쓰질 않았습니다. 10권을 읽고 나서 썼던 글인데 그 사이 11권과 12권이 나왔네요.



여기에 관해서는 이후에 추가로 여유가 있을 때 적어보고자 합니다. (즉, 1부 끝)

일단 글의 결론만 내리기로 하죠.
'트리퍼네이션을 하지 않고도 호문쿨루스를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답을 제시하겠습니다.
임상심리학자가 되면 됩니다. 임상심리학자가 하는 주요 업무가 호문쿨루스에는 상상력이 가미되어 잘 묘사되어 있다, 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ps - 혹시나 제가 이야기한 게 임상심리학자의 어떤 '특별한' 능력을 소개한 것처럼 느껴지셨나요?  그랬다면 제 글실력이 부족해서 핀트가 다소 벗어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임상심리학을 하는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혹독한 현실에 뒹굴면서, 매일 온갖 불평을 마음에 쌓으면서도 임상심리학자로써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 말이죠. 호문쿨루스를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일 수 밖에 없는 주인공 니코시처럼.
Posted by feveriot
교재 사러갔던 서점에서 '이토 준지 신간'이란 말을 보자 마자 바로 구입결정.

블로그에서 밝힌 적이 있나 없나 모르겠는데 나름 이토 준지의 열렬한 팬입니다.
주변인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한 일화로, 고3때 매일 밤 자기 전 '이토 준지 공포컬렉션'을 한 권씩 읽고 잤던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였달까...;

제목만 들어서는 어떤 새로운 공포를 맛보게 해줄 것인가 추측불가능하게 미스테리한 제목입니다.
직접 보실 분들을 위해서 스포일러를 자제해야 겠지만 어차피 부제목에도 써져있으니...;

부제는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입니다.
이토 준지와 저주받은 고양이의 동거!!

자기 만화 패러디도 많고, 너무 재밌어서 구입하자마자 세번 정도 독파했답니다.
역시 J군은 공포와 개그 모두에 소질이 있다는 걸 증명했네요.

ps. 속표지에도 카툰이 있네요. 이걸 이제서야 알았네요.

평가: ★★★★★★★★★☆ 9/10
Posted by feveriot

◆ 호문쿨루스?

Homunculus: 호문쿨루스.  

'작은 사람', 즉 중세에 요정을 부르는 말이었던 이 라틴어는 심리학에서도 나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내용으로, 심리학 개론에도 나오죠.

심리학 개론을 공부하신 분은 'Homunculus'라는 말보다는 '신체운동뇌도' '신체감각뇌도'라는 말이 더 익숙하실 겁니다. (아마 시험 공부하느라 열심히 외우셨을거에요 ^^)

대뇌 피질 전두엽과 두정엽 각각에 운동과 감각 관련 담당 피질들이 모여있는 걸 발견한 사람은 신경외과 의사였던 펜필드Penfield 인데요. 그는 살아있는 뇌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하여 결과를 보고 했습니다. 피질에는 고통을 느끼는 통각 수용기가 없기 때문에, 국소마취를 통해 머리 뚜껑을 열어서(^^;;) 대뇌 피질에 침들을 꽂고 전기적인 자극을 주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각각의 운동/ 감각피질 영역과 민감한 부분이 그만큼 더 넓은 피질을 차지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운동피질은 손가락과 입, 입술, 혀, 눈을 담당하는 부분의 피질이 넓고, 감각피질은 손과 혀 등이 넓은 것이죠.  그 비율을 본떠서 재구성한 인간 모형이 아래 사진입니다.








빨간 게 감각 호문쿨루스 모형이고, 파란게 운동 호문쿨루스 모형입니다.

 

 

여기에 누군가가 Homunculus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머리 속에 저렇게 웃기고 재밌게 생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의 기원이죠. '신체운동뇌도' '신체감각뇌도' 물론 이러한 표현도 맞긴 하지만 번역 과정에서 본래의 그 재치있는 은유는 사라져버린 듯 해서 개인적으론 아쉬운 느낌이네요. 아무튼 인지심리나 신경심리학에만 관련되어있을 것만 같은 저 모형이 임상심리와 과연 관련이 있을까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아이디어에 접점을 그리도록 해 준 것이 <호문쿨루스>라는 만화였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만화의 중요한 아이디어가 바로 여태 이야기했던 'Homunculus'죠. 기본적으로 '우리 머리 속의 Homunculus'는 저 사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민감한 감각기관이나 잘 돌아가는 운동기관이 조금 다를 수도 있고, 사고로 운동기관을 손실한 경우에는 피질영역의 감각뇌도에도 이상이 생기게 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누구나 대충 저런 모습의 '작은 인간'이 피질 속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만화에서는 그러한 '뇌 속의 작은 인간, 즉 호문쿨루스의 모습이 사람마다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모티브로 삼죠.


◆ 만화 <호문쿨루스> 내용

 <호문쿨루스>의 주인공은 '트리퍼네이션'이라는 뇌에 구멍을 내는 수술을 하게 되면서 일종의 육감에 눈을 뜨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된 '각각의 인간들에게 잠재된 호문쿨루스'를 눈으로 볼 수 있게된 것입니다.   

트리퍼네이션의 원리를 설명하는 중.. 
사실 여부는 회의적이지만 왠지 설득력은 있네요.


이 <호문쿨루스>라는 만화에서 이야기하는 '호문쿨루스'는
'무의식적으로 투영되는, 개인에 대한 요약된 자기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호문쿨루스'는 등장인물들 각자의 과거의 경험들과 약점, 내면의 본질 등이 함축된 결정체입니다. 만화는 그것이 외면화된 모습을 주인공이 볼 수 있게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죠.  

저는 이 만화를 보면서 그러한 아이디어가 뇌 속에 꽂히는 순간, 머리 속에서 갑자기 엔돌핀이 파도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더구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접한게 너무 놀랍고 즐거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의 '호문쿨루스'에는 각자 그러한 모습을 갖게된 배경, 이유가 있고 동시에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이 있습니다. 마치 임상심리학에서 말하는 내담자들의 '진단명'이나 '프로파일'처럼요. 무엇보다 '호문쿨루스'에는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처음 목격하게 되는 지나가는 '호문쿨루스'들.

저런 걸 정말 보게 된다면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아무래도 무섭울 것 같네요.



◆ <호문쿨루스> 따져보기

공상으로 가득찬 것 같아 보이는 이 만화가 현실적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요.단 '트리퍼네이션'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시술임은 분명합니다. 중세 유럽이나 중남미 문명 등 몇몇 문화권에서 이을 통해 '특별한 정신세계'를 이룩하거나 '정신치료'의 역할을 한다고 믿어졌던 것도 맞구요. 현재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하나의 치료법으로 취급되고 있다네요. (인터넷에 시술을 한 사람 이야기도 있습니다.물론 끔찍합니다 ^^;;)  ITAG라는 트리퍼네이션 보급 단체도 실존합니다. 그들은 트리퍼네이션이 현대의 항정신제 약물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트리퍼네이션보다 좋은게 없다고 주장하네요.

하지만 트리퍼네이션에 대한 신뢰성의 우려 역시 분명히 존재합니다. 첫째로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이기에 현실에서도 의사과학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신병동 환자에게 관장을 행하고 피를 뽑고 굶기고 손발톱이빨을 뽑고 잠을 안재우고 의자에 않혀놓고 미칠듯이 돌리던 그런 18c의 치료법이나 동종요법, 안수기도요법과 큰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두 번째로 트리퍼네이션은 너무 위험합니다. 요즘 누가 좀 우울하고 안절부절 못한다고 자기 뇌를 파내려고 하겠습니까? 누가 두개골에 구멍을 뚫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던 '로보토미'나 '가축취급 정신병동'처럼 트리퍼네이션 역시 정신과학의 흑역사 중 하나로 취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조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전혀 근거가 없는 '트리퍼네이션'과 달리, 사람들에게 뇌의 측두엽 특정 부위를 자극했을 때 '육감'이라고 칭해질만한 '영적 경험'을 한다는 것을 캐나다의 신경과학자 퍼싱거가 실험적으로 밝혀냈습니다.

원래 종교가 없었던 실험 참가자들은 그 부위의 자극을 통해 '어떠한 존재가 자신과 함께 있는 듯한'
'자신이 여태 느끼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 듯한' 경험을 했다고 보고하고 실험 후에 신앙을 가지게 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결과 해석에 대한 약간의 논쟁거리도 있습니다만, 과학적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트리퍼네이션보다는 신뢰가는 이야기죠.

그 이전에, 뇌 피질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경험을 바꿀 수 있다는 연구는 있었습니다. 펜필드의 실험이 사실상 그걸 증명했던 거구요. 그런데 영적 경험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으로 봐서, 현실에서 만화같은 '호문쿨루스'를 보게 되는 일은 어려울지 몰라도 최소한 그런 기분을 내는 일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게 망상이든 뭐든 말이죠.


◆ <호문쿨루스> 심리학으로 뒤져 보기

여태까지는 사실적인 정보 내용을 파악하고 신경심리학적 연구와 관련해 이야길 해보았는데요. 이미 말했듯이 실상 '호문쿨루스'들이 임상적으로 사용되는 진단과 프로파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과 함께 임상심리학적 관점으로도 이야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문쿨루스'들의 상징성은 마치 프로이트 정신분석에서 꿈을 해석할 때 사용하는 상징의 해석과 비견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에서는 꿈에서 나타나는 상징의 해석을 통해 내담자의 성적 무의식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죠.  

하지만 오히려 진단과 프로파일은 현재의 드러나는 증상과 행동 양상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것임에 비해서, 만화 속의 '호문쿨루스'는 쉽게 알아 볼 수 없는 미스터리 하긴 하지만 분명히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함축된 정보를 암시해준다는 점이 차이 같습니다.


또한 약간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이고 해석 자체가 환자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프로이트식 상징 해석과 달리 호문쿨루스는 분명히 실재하는 개인의 표상이면서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니 치료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인 것이죠. (물론 만화 속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이 만화 속에서는 실제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치료'가 행해지게 됩니다. 만화이기에 그 방법이 조금 과격해 보이고 판타지성도 있기는 하지만,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공부해보신 분들은 그 방법이 실제로는 '직면적'이고 '현실역동적'인 상담 치료에 가까운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관점에서는 아들러학파의 영향을 받은 방법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만화에서 처럼 자신도 이유를 모르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꼭꼭 감추려고 피하려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던 만큼, 감정의 덩어리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채로 자신도 모르게 고이 남아있게 됩니다. 그것이 직면을 통해 피하지 못하고 드러나게 된다면, 그로 인해 감당해야할 감정의 위력도 큽니다. 일단 파헤쳐져 버린 감정은 인간 내부에서 순식간에 퍼져버려서 자신이 깨닫기도 전에 어떤 식으로든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버립니다. 

한 번 눈물을 쏟기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가 없죠. 그 과정에서 이성은 별 역할을 못합니다. 한참 울고 나서야 왜 우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으려고 하죠. 그렇게 의미를 만들어 가는 거구요.

결국 <호문쿨루스>는 호문쿨루스를 볼 수 있게 된 주인공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또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약한 모습에 대해서 직면하게 되고 이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자기를 규정짓는 '호문쿨루스'의 틀을 깨고 '진짜 살아있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놀랍고 감동스럽지 않나요?

<사이코닥터>나 <어둠의 임상심리사> 같은 임상심리학 관련 만화를 전에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 만화들에서 다뤄지는 치료의 전형성과 비약성에 비해 오히려 SF같은 상상력을 지닌 이 만화가 훨씬 현실적이고 감동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사이코닥터>같은 경우, 선정적인 소재를 가지고 심리학과 정신분석에 대한 편견과 오해만 심어주는 만화라고 보거든요.)

이 만화가 현실적인 마지막 이유는, 실제로 Homunculus가 영속적인 것이 아니고 바뀌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신경과학자의 책인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실험실>을 보면 '환상사지'라는 희귀한 병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사고로 팔 다리를 잃은 후에도 팔 다리의 감각을 계속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팔다리가 멀쩡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어렵기에 일반적인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그들이 외상후 스트레스로 인한 해리증상이나 망상, 환각을 보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라마찬드란 박사는 이 환자들을 데리고 직접 연구를 했고, 그 결과 실제로 그 사람들의 뇌는 그러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지가 사라졌다고 해서 뇌의 피질 활성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특히 사지 절단으로 인해서 사용되지 않게 되는 뇌의 감각피질(팔 다리)은 점차 가까운 곳에 위치한 피질(코 입)과 동화되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원래 존재했었던 사지 감각(팔다리)과 새로 동화되는 감각(코나 입)이 혼선을 일으켰고 코나 입에 자극이 주어질 경우 아직 남아있는 팔다리의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는 거죠.

만약 그 사람의 대뇌 피질 감각 지도를 모형으로 만들어 본다면, 분명하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다른 연구에서도 음악가들의 뇌를 스캐닝했을 때 각 피질 영역의 차이가 발견됐는데요. 기타리스트들은 손가락에,  트롬본 연주자들은 입술에 더 많은 뉴런이 할당되어 있었답니다. 또한 지휘자들은 청각에 대해서 특수하게 발달되어 있었죠.

이처럼 뇌 안의 'Homunculus'는 실제로 삶의 과정에서 모습이 변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감각, 운동 뿐만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에 민감하거나 또는 반대로 '특정한 주제'에 약화된 누군가의 뇌가 있다면, 그 사람의 자기 표상은 그 사람이 가진 그 '특정한 주제'에 맞춰서 변형될 것임은 자명할 것입니다. 그게 꼭 만화와 같은 'Homunculus'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 마치며

Homunculus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기 표상, 즉 'self-image'를 가지고 있죠.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사람일 것이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물론 그런게 존재한다는 생리적이고 신경학적인 직접적 증거는 당장 없습니다만, 간접적으로 알 수는 있겠죠. 우울증이나 사회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실제 모습을 왜곡합니다. 자기 스스로 '난 정말 못 생겨서 남들이 싫어해'라고 생각하고 거울을 보기조차 싫어하죠. '자신이 못 생겼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 중에서 저는 정말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 약간 딴소리였나요..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 못하고 마무리하는 느낌입니다만...위의 배경 지식들과 만화의 감동이 교차되면서 결론적으로 저에게 전달된 아이디어는 이것이었습니다. 

"만약 'Homunculus'처럼 뇌 안에 자기를 비추는 '작은 인간' 같은 기제가 정말 있다면? "
 

"그리고 그것을 만화 내용처럼 어떤 방법으로 방법이야 어떻든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런 상상을 하게 해줬다는 것만으로 저는 이 <호문쿨루스>만화에 대해서 경탄해 마지 않습니다. 언젠가 신경과학과 인지과학이 발달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그런 날이 분명히 오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ps. <호문쿨루스>는 아직 완결이 되지 않은 만화입니다.
현재까지도 충분히 재미있었는데, 왠지 조만간 결론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더 기대중입니다.


Posted by feve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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