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셔터 아일랜드 vs. 소설 살인자들의 섬

소설을 본 지 오래되어서 (2006년 경) 잘은 기억이 나지 않고 세세하게 비교를 하긴 어렵네요.

그렇지만 확실하고 눈에 띄는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게 영화의 결론 부분입니다.
제가 받은 인상에 의하면, 그 결말로 인해서 전달되는 주제가 확연히 달라졌기에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일단 스포일러 조심. 경고했습니다 !!!!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 전체와 결말까지가 주인공의 슬픈 운명에 초점에 맞추고 있습니다.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친 정신세계가 연극이었음이 밝혀지는, 그리고 주인공이 그렇게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던,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트라우마, 그러한 운명에 놓인 정신세계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이를 전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정신분열자'임에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트라우마'가 있다"는 생각을 전달합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통찰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다시 현실 뒤의 자기 세계로 도망가 버릴 수 밖에 없었던, '트라우마의 크기'를 전달합니다.

독자들이 주인공의 상태에 대해서 공감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 아마 결말 부분에서 의사의 웃음이 그렇게 슬프게 다가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결말이 약간 다르게 되어 있더군요.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려주는 측면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가던 것과 달리, 영화에서는 자리를 뜨기 전 의사에게 한 마디를 던집니다. 대충 "live as a monster or die as a good man?"인데, 번역은 "괴물로 살겠느냐, 선량한 사람으로 살겠느냐?"라고 생각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을 보신다면 어느 누구나, 이 시점에서 주인공의 현실 지각이 멀쩡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 스스로가 로보토미 시술을 받게 될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그것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약하자면, 소설이나 영화나 결말에서 공통적으로 정신분열 환자들에서의 '통찰 없는' 양상을 잘 보여줍니다.
소설의 결말이 통찰 없는 상태로 다시 돌아간 상황에서 결말을 맞이하는 것에 비해서,
영화에서의 결말은 통찰 없는 상태로 다시 돌아간 듯 보이지만, 마치 자신이 그것을 선택한 듯이 그러한 연기를 한 것으로 보이게끔 행동하고 결말을 맞이합니다. 당시 주인공의 구체적 상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만 가능하겠지만 최소한 그 말을 한 순간의 정신 상태는 현실에 기반하여 이야기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때문에 사실은 주인공은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지만 여태까지 잘못을 되돌릴 수 없으므로 '괴물로 살기 보다 좋은 사람으로 죽으려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구나, 또는 '괴물로서 반복된 삶을 왔다갔다 하며 사느니 그냥 죽으련다'  하는 생각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괴물로 사느니 그냥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적 한 일면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영화 속의 이러한 양상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정신분열적 세계관을 잠시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나 주인공은 심각한 정신분열병 환자입니다. 정신분열병 환자들이라고 해도 항상 환각이나 망상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현실감이 돌아오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자신이 했던 일들을 부끄러워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죠. 트라우마랑은 다른게, 사고과정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열병 환자들의 질병 기원이 트라우마에서 오는 게 아니듯이, 영화 속 주인공도 사실은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게 됩니다.

때문에 주인공은 정신적 외상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현실을 도피하게 된 원인을 가져다 붙이고 살아왔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고과정의 문제라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러한 점을 인정하지 않으며, 거의 고려조차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환자 스스로가 이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까요?

대개의 경우에는, 이를 부인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기제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점점 사고과정에서의 문제 영역을 만성적으로 넓혀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더 커다란 괴물이 되어 갈 것입니다. 절대로 자신의 본질적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려 할 것이며 이로 인해, 주관적 세상은 괴물이나 악마는 전혀 없고 평화와 정의만 가득한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괴물'을 언급하였던 걸로 보아, 주인공은 자신의 상태가 '자기 스스로 만들어온 괴물'이란 점을 깨달았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약하자면 소설의 주제가 '외상으로 인해 환상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슬픈 인생과, 정신질환자들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미약하게 나마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신적 외상에 대해서 외과적 수술을 시행하는 당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다면,

영화의 주제는 '정신분열자가 자신의 사고과정에서 문제를 직면한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대답으로서, 영화는 '아마도 잔인한 외과적 시술을 받아들일 정도 일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정신분열증 환자가 도피하는 주관적 세계의 크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과 비교할 때, '괴물(=정신분열)로 사느니 제정신일 때 그냥 정신적 죽음(=절제수술)을 선택하겠다'라는 식으로 가버려서, 정신질환자들의 정신세계를 괴물로 비유하며, 공감대를 거부하여 버립니다.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디카프리오의 트라우마나 환각이 원작을 리얼하게 반영하긴 했지만, 그 심정에 공감하긴 어려워 보였는데, 결말을 보면 마지막까지 관객들이 디카프리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으려 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결말도 나름 괜찮긴 했지만 소설이 전체적으로 몰입도가 더 높고 이야기의 긴밀성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원작의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으면서도 결말을 다르게 잡았기 때문에 주제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그토록 선명한 남아있던 에필로그의 그 쓸쓸한 인상이,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도 않고 마치 뻔한 반전 트릭을 위해 나오는 것처럼 비추어 지는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Posted by feveriot

아바타’ 화려한 3D 영상 부작용, 우울증에 자살충동 호소


얼마전에 올라왔던 기사인데, [아바타]를 보고 난 후 관객들이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호소할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보도에 인용된 네티즌들은 영화를 보고 다음 날 온 세계가 무의미해졌다며 판도라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자살마저 하고 싶다고 호소했답니다.

이 정도라면 당연히 영화가 어느 정도인지 호기심이 들게 마련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혹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미 충분히 잘 나가고 있는 영화라서 그런 마케팅 방법이 필요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정말 보고 싶지만 매진이라서 볼 수가 없는'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무슨 이런 마케팅이 필요하겠습니까.

영화를 예매를 하긴 했었으나 솔직히 '외계 종족'의 이미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스토리 플롯도 별로 호기심이 당기지 않았서 보지 말까 생각도 했는데, 호기심을 당기는 기사에 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매 후 1주일을 기다린 끝에 결국 소문도 많던 [아바타]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에 대한 감상에 앞서서, [아바타]를 '경험'하고 난 후 제 기분을 묻는다면, '뭔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복잡한 심정'을 느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3D 영화 증후군'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3D 입체 영상 자체가 개개인에 따라서는 구토나 어지러움, 두통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와 동행했던 이 역시 어지러움을 호소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로인한 고통은 없었고, 또한 3D로 인한 입체감 경험은 적었기에 3D로 보지 않아도 어차피 비슷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3D 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입체감보다는 CG의 이질감을 줄여주는 느낌을 주는 듯 했습니다. 분명한 건 다운 받아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였습니다.

아무튼 저 역시 '복잡함 심경'은 분명 느꼈으나... 위 기사에 언급된 네티즌들의 이야기가 공감되느냐 묻는다면,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하고 싶습니다.

우울? 자살충동? 뭐 어떤 영화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슬픔이나 자살 충동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공포영화를 보고 슬플 수도 있는거고,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무서울 수도 있는 것이며, 로맨틱 영화를 보면서도 죽고 싶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올드보이]를 보면서는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미스트]를 보고 극장에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고, [희극지왕]을 보면서 한 시간 동안 울었지만, 그건 제 나름의 독자적인 경험인 거고 공감이 안될 여지가 큰 것입니다.

뭐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게, 솔직히 전혀 세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영화 속 '판도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말로 못할 복잡함'을 좀 풀어서 설명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부터 스포일러 입니다-------



제가 느끼는 약간의 혼동은, 저는 계속해서 한 인간 입장에서 영화를 보려고 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종반부에 더더욱 그랬죠.

일단 저는 사실 '판도라'에 발을 딛고 나서, 그곳이 낙원이라는 생각이 한번도 들질 않았습니다. 할레루야 산을 보게 되었을 때, 그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면서 신선이 살만한 절경이라는 생각은 들었죠. 그런데 인간이 살만한 곳이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네, 그곳은 온전히 나비 종족의 것입니다. 각 개체는 자신들이 진화해 온 환경에서 진화를 계속 해 나가는게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을 필요야 없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어느 사이 구도가 인간 vs. 나비종족의 대전투가 이뤄질 듯한 플롯이 나타나고, 평화적인 방법에 대한 희망은 깨지고 결국 전쟁이 이뤄지게 됩니다. 그러한데 주인공은 나비종족 편입니다. 또한 정의와 도리는 원래 주인인 나비종족에게 있습니다. 인간들이 일을 벌이는 동기는 단순한 '경제원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미 판도라 종족의 독립, 인간에 대한 징벌으로 결말이 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종족들을 결집시킬 때 가장 전율이 일면서도 무언가 슬픈 순간이었는데 결국 전쟁이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얼마나 아이러니 한 순간입니까? 제가 인간인데 제가 이입해서 스토리를 경험해야 할 주인공은 나비 종족의 편에 서서 인간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정의가 나비 종족의 편에 있더라도 저는 이런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고 불편했습니다. 마치 미국인의 입장에서 '반딧불의 묘'를 본다면 이럴까, 일본인의 입장에서 '난징! 난징!'을 본다면 이럴까 하는 심정이 들더군요. 물론 플롯의 드라마는 완전 다르지만 그저 영화를 대입해서 경험할 때 피해자 가해자 경험의 구도를 비교해본다면 그렇다는 것이죠.

저도 약간 오버해서 생각한 것 같긴 하지만 만약 저보다 그런 관점을 더 몰입해서 경험한 분이라면, 불쾌하거나 우울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바타]에 나온 일반 인간들은 나비 종족과 비교해서 공감과 유대도 떨어지고 배은망덕하게 구는, '근본을 잊는 몰지각한 존재들'처럼 그려지니까요. 영화에 너무 몰입해서 영화 속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일반화시킨다면,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사실 그건 [아바타]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아무튼 제가 경험한 것은 그러한 구도에서 오는 '불편감'이었지요. 어떻게든 자살 충동,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을 공감해보고 싶긴 한데, 사실 저는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절경에 반해 현실을 떠나 판도라를 가고 싶다는 그러한 분들의 논리는 사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조차 되지 않습니다. 저는 2154년 기점으로 그려진 문명 기술에 도달하려면 언제가 되어야 할지, 솔직히 그런 문명을 빨리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뭐 우울할 정도까진 아니지만요. 

결론은 '도무지 왜 이 영화를 보고 우울해 하는지 모르겠다'겠네요.


이외에는 영화에 대한 몇 가지 감상입니다.

약간 색다른 아이디어라고 생각은 했는데, 영화 속 '아바타'가 [매트릭스]처럼 그저 가상 공간에 주어진 '온라인 상의 정보'가 아니라 영화 속에서는 나비 종족과의 유전자 결합으로 탄생한 실제 존재하는 생물학적 개체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접속을 하긴 하지만 현실의 누군가랑 한다, 다시말하면 [존 말코비치 되기]가 되겠네요.

전체적인 플롯은 [모노노케 히메]와 솔직히 흡사한 것 같더군요. 표절 공방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이 정도면 상당한 재창조라고 봅니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창의적이든지, 플롯이 얼마나 근사하든지 상관없이, 영화는 결국 어떤 상상력을 하나의 작품으로 얼마나 잘 구현해내는가가 결정하니까요.

제 입장에서 솔직히 [아바타]는 2010년, '궁극의 SF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판도라'의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거의 없되 영화 속에서 너무 리얼한 미래 문명을 그려놔서 왜 현실에서 그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냐!는 식의 불평이 생길만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주요 소재부터, 배경, 아이디어, 아이템, 더불어 이러한 것들을 표현해내는 구현능력까지. 정말로 어느 순간부터는 CG라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버립니다. 말 그대로 최첨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SF적인 상상력도 좀 더 발전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영화들이 SF 소설에서 이야기를 빌려서 상상력을 발휘해 왔는데, 지금은 영화들이 워낙 시각적으로 상상력을 잘 구현해주니까 SF 소설들도 상상도 못할 아이디어들을 좀 더 만들어 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썩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SF적인 상상력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더 좋아하실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Posted by feveriot

 이전 블로그에서 썼던 글인데 이제서야 다시 옮겨옵니다.

지난 여름, 처음에는 볼 생각이 없었던 영화인데, 블로그 방문자 한 분이 리뷰를 요청하셔서 보고 썼던 글이랍니다. 블로그 이전하면서도 전부 퍼오지 않고 몇 개는 남겨두려던 마음에 그냥 놔뒀었는데, 요번에 스피릿과 오퍼튜니티와 2009년 현재에도 활동하고 있다는 뉴스 기사를 보고 생각이 나서 아주 찔끔 수정해서 옮겨보네요. ^^;


화성탐사로봇 스피릿 오작동 '반항?'


약간의 오작동을 일으켰다는 이야기인데, 왠지 재밌어서 다시 한 번 제가 썼던 글을 읽으면서 혼자 재밌어 했답니다 ^^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래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월-E>가 아동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 있잖아요... 월트디즈니나 드림웍스가 만들어서 방학에 맞춰서 개봉하는.

 

이유는 모르지만 제멋대로 <월-E>도 그런 3D 애니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보러 갔는데,

보고 난 후의 느낌은 그것들과는 정말 다른, 꽤나 낯선 느낌이었달까요.

 

지금부터 영화를 보면서 제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두서없이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포일러는 포함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되도록이면 영화를 보신 분들만 읽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직도 기억나는 "우어어얼이?"  "이이이바~?"








초반부터 황폐화 된 지구를 보며 상당히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빌딩으로 보이던 거대한 건물들의 나열이 사실은 쓰레기의 마천루라는 사실부터.

 

다행히 이야기 내내 맥락을 전달해 보여주는 연출이 매우 뛰어나서, 의문을 던져주면서도 동시에 왜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 자연스레 이해시키더군요. 대사가 거의 없는데도, 말 없이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영상을 보여주기만 하면서 전체 배경 스토리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알면 알수록 정말 암울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더군요.

쓰레기장이 된 지구에서, 바퀴벌레 하나를 동지 삼아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는 로봇.




<초반부는 '나는 전설이다'의 로봇판 같았습니다.> 

   

인간들이 지구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버린채, 청소 로봇들에게 자신의 할일을 던져놓고 우주로 도망갔음을 확인했을 때, '정말 인간답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애초에 가지고 있던 '아동용 영화'라는 선입견은 황폐한 지구를 그리는 초반 5분 동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영화 속의 절망적인 지구 모습은... 그렇게 완전히 낯선 미래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필립 K. 딕의 소설들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에서는 하나같이 디스토피아를 보여줬죠.

그렇지만 <월-E>의 황폐하게 사막화된 쓰레기장 지구 모습은 필립 K. 딕조차 생각 안해봤을 것 같더군요.

 





동시에 초반 5분동안 극도의 적막감과 대사 부재로 인해서
 답답한 기분 든 분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윌-E는 쓰레기의 마천루를 만들며 하루를 보내다가 돌풍이 나타날 때 쯤 컨테이너 박스로 몸을 숨기며 휴식을 취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일을 하고, 수집품을 챙기고, 휴식을 취하며 비디오를 틀고, 비디오 속 춤을 따라하는 윌-E는 하는 행동만 봐서는 로봇으로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 답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초반 내내 감정 이입은 잘 되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로봇'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주인공이지만, 동물이나 휴머노이드라면 몰라도 완전한 로봇에게는 조금 어렵더군요.

기계나 로봇에 대한 감정이입은 아직은 낯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윌-E가 대체 언제부터 그 일을 시작했을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윌-E들이 또 다른 쓰레기가 되어 버려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윌-E와 함께 쓰레기 처리 일을 했었을지도 모르죠.

무려 700년 동안 지구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을 하다가, 동료 로봇들도 하나 둘 씩 고장이 났을 겁니다.


(여기에서 월-E 생존 미스터리가 궁금하시다면 영화벌레님의 블로그로 쓩)


홀로 일을 시작한게 얼마쯤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는 외롭고 고독해 보이는 존재였습니다.

인간들은 지구와 로봇들에 대해서 책임도 지지 않고 도망가 버렸고, 황폐한 지구를 지키는 조금은 하찮아 보이는 청소 로봇 하나. 

 

그럼에도 로봇은 자신의 할일을 다하고 또한 치열하게 생존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는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단지 안쓰러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죠.

무슨 감정인지 딱 잘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리 단순해 보이는 설계로 된 로봇이 
어떻게 그리 복잡한 인간다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일단 접어두고 생각하는 게 좋겠죠?>


 

외롭소 힘들텐데, 그걸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수용한 채 어떤 비관적인 생각이나 포기 없이 그 나름의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어려움과 힘든 삶에 대해서는 저도 절실하게 공감되어서 안타까움이 들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서 저는 아직도 제대로 체득하지 못했기에..


대체로 포기와 좌절을 있는 그대로 납득하고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을 목격했을 때... 저로서는 존경과 경외감이 드는 것 같습니다.

 

쉽게 쓰고, 쉽게 버리고, 가지고 있는 걸 소중히 할 줄 모르고, 결국에는 우주를 떠돌며 로봇들에게 의존해 편하게 살고 있는 진짜 인간들보다, '인간의 미덕'이란 것은 오히려 월-E만 가지고 있었던 거죠.

 

 

 <말그대로 짠해보이는 얼굴을 한 월-E>

 


하지만 보통 그러한 감정은 영화를 볼 때 클라이막스나 에필로그를 통해서나 느껴지던 것들인데요. 

영화 초반에 그런 감정이 유발되었으니 러닝타임은 한참 남았는데 뭔가 어색하고 난처하긴 했습니다.

 

아무튼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죠. 아까말했듯이 월-E 를 처음 봤을 때는 그저 고철덩어리로 보였는데, 어느 순간 '로봇이 외롭다?'라는 점에 대해서 저도 공감이 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때부터는 월-E의 고독과 애처러움은 로봇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브'라는 로봇이 나타난 이후에 더 크게 느껴진 듯 싶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월-E는 이브에게 첫눈에 사랑을 느낀 듯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아닌, 명령을 수행하는 로봇에게 남성 여성의 개념이 있다고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이야기 속에서 그런 암시도 없었기에 저로써는 조금 당황스런 전개였죠.

 

때문에 윌-E가 사랑을 느꼈다고 생각하기 보단, 홀로 너무 외롭고 고독하게 지냈기에 새롭게 나타난 자신과 유사한 로봇의 존재로부터 위안을 느꼈던 게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자신과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제 관점으로 그냥 첫눈에 반했다는 걸 납득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겠죠. 제가 별로 그래본 적이 없어서.

 

 <짝사랑 하는 남자 로봇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

 


이후 이브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브를 되돌리기 위해 월-E는 지구를 벗어난 모험을 하게 되죠.

이 때부터는 다른 애니메이션의 느낌과 아주 큰 차이는 없습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고, 사고를 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의도했던 것보다 큰 것을 얻죠.


사실 이때부터는 어느정도 무난한 스토리처럼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거대하고 지독한 어려움은 없었고, 순간적이고 상황적인 어려움조차 또한 빠르게 해결되죠.

초반의 적막과 고독, 황폐함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월-E>는 커플을 위한 러브스토리이자, 대학생과 성인을 위한 감동 휴먼 스토리였습니다.

정말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냈기에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특히 러브스토리로써, 상당히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낯간지러울 정도였어요. ^^;;

한 친구는 '이 영화를 남녀가 같이 보고도 관계 진전이 안된다면 그건 포기해야 된다'라고 하더군요. ^^;

 

< 낯간지러웠던 그 장면입니디만, 영화를 안 봤다면 뭘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죠?>

 


마지막 장면에 와서는 약간은 진부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분명 뻔한 이야기를 예상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찔끔 나오더군요. ^^;

 

지구에 홀로 남아 고장날 날만 기다리던 쓰레기 처리 로봇인 월-E는 '인간과 닮아있는 의지와 사랑'으로 결국 친구를 얻고, 지구를 지키고, 인간을 구하고, 새 삶을 얻고, 사랑을 얻었습니다. 더 좋을 수 없는 해피엔딩이죠. 

 

저도 해피엔딩이 좋습니다.

대체로 해피엔딩일 경우에는 과정이 아무리 힘들었고, 공감하고, 몰입해던 영화라도, 극장을 나오는 동시에 제가 영화 속 주인공의 삶에서 빠져 나와도 어떤 고민이나 망설임이 생기지 않거든요.


거기에 서양 미술사 화풍을 패러디하여 보여주는 엔딩 에필로그 겸 크레딧은 영화를 보고 나오는 이의 발걸음에 깃털을 달아주는 것 같더군요.

(너무 재밌으면서도 아름다워서 사진을 구해보고 싶었는데 없는 것 같네요.)

 

 

<사람들 앞에 나타난 월-E. 변신이 가능할까요? >



하지만 제게 더 강하게 기억되는 것은 해피엔딩보다 월-E가 보여준 초반의 세계관입니다.


지구로 돌아온 인간이 꾸려 나갈 새로운 미래 세상에 대한 상상보다도 700여 년 동안, 월-E가 경험했을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상상이 더 저에게 간절했습니다.

  

이러한 고독과 외로움을 보여준 영화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영화를 통틀어서도 그리 흔하지 않았다고 보거든요. 


(아마 캐스트 어웨이 정도?)


명배우로도 연기하기 어려운 것을 CG와 로봇을 매개체로 하여 오히려 더 진솔하게 보여준 점, 그러한 점도 월-E가 미국에서 흥행과 평단 모두의 인정을 받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월-E가 느꼈을 고독과 외로움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관심갖지 않는 어딘가의 시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네요.

 

<월-E와 아주 비슷한... 현실 속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가까운 미래일지 먼 미래일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난 후의 인류가

화성에 발을 디딜 때, 마중나오는 것이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라면...?

 

<월-E>는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겠죠...^^


Posted by feveriot

극장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니기에 다크나이트 이후 본 영화가 한 편도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더라구요. 

고만고만한 것들 중에서 뭘 볼까 고민하던 중에, 그나마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든 게 [미스 홍당무]였습니다. 사실 진즉 보고 싶었는데, 시기를 놓친 터라 아직 상영하나? 해서 찾아봤더니 다행히도 일부 극장에서 하더라구요. ([도쿄!]도 보고 싶었는데, 이건 보러 가기가 너무 귀찮아서 포기.)
무튼 그렇게 [미스 홍당무]를 보고 왔습니다.
보고도 리뷰 안하는 경우도 많지만, 제가 이야길 해보고 싶은 리뷰 관점은 두 가지 입니다. 


주인공인 양미숙의 심리 이해해보기, 

그리고 영화가 재미없다고 악평을 달고 다니는 이들 이해해보기.


재미없다고? <미쓰 홍당무>가 뭐 어때서?!


◇ 양미숙 이해1: 수치심

양미숙을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완전히 공감이 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배운게 배운거다 보니... 어떻게든 심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꽤 공감하는 부분이 '수치심'이고, 조금 공감 어려운 부분이 '애정망상'입니다.

양미숙은 '안면홍조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증후군은 현상을 모아놓은 것이니까, '안면홍조증'을 가진 사람도 있겠죠.
볼이 빨개지는 것은 자율신경의 활동이니 스스로는 어떻게 조정할 수 없는 기제일 겁니다.

처음엔 수치심이 느껴져서 볼이 빨개졌을테지만, 이후에는 볼이 빨개져서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는거죠. 자율신경은 말 그대로 자율이라 항상 생리적 원인에 따라 반응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남들이 날 이상하게 볼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볼이 붉어지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인지가 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자율 반응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도식', 즉 '틀'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울한 사람들이 꺼내놓는 인지 삼제(우울증 걸린 사람들이 꺼내놓는 대표적인 사고 패턴 3가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사고, 세상에 대한 부정적 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도 원인이기보다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 양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 사고일 뿐이지, 부정적 사고가 다시 부정적 사고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들이 낳는 부정적 사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과, 세상과, 미래에 대한 신념에 근거한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죠? 그렇지만 그러한 신념들은 사실 의식되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신념'은 거기에 분명하게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자각하기 어려운 것, 즉 '프레임' 입니다. 왜 자각이 어려울까요? 아마 자신이 가진 프레임을 파악하고 그것을 비교해가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없을 때는 그것은 당연히 합목적적이고 순기능을 합니다. 때문에 프레임이 잘 기능하는지를 비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죠. 그렇지만 서서히 변형이 이뤄지거나, 갑작스런 외상 경험으로 인해 큰 왜곡이 생길 수 있을테죠.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원래의 프레임으로 돌아가는 일은 상당히 어렵고, 그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생깁니다. 아무리 없애려고 애쓰고 노력해도 마음의 흉터는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한 결과가 우울증을 비롯한 여타의 '신경증'들로 나타날 수 있는거죠. 

여기에서 제가 비유하고 있는 '프레임'은 말만 다르지 인지행동치료(CBT)에서 말하는 핵심신념(core belief), 또는 도식(shcema)에 가깝습니다. 

(인지행동치료의 분파로써 도식치료라는 것이 있으며 거기서 사용되는 설명을 차용하되,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들기 위해서, '프레임'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관점'이나 '틀'이라고 생각하시면 사실 편할 것 같습니다.)

우울증의 예를 계속 이어보자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 '프레임'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아마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프레임은 시간과 환경, 타인같은 여러 자극들을 압도적 크기로 과장하고 자신의 능력을 크게 위축하도록 조정되었을 겁니다.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울증 환자들은 그것이 왜곡되었음을 절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압도감과 무력감은 진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거지요. 

프레임 이야기는 비유지만, 모두가 그 프레임에 원인이 있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환자들 스스로는 절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며,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그 프레임이 자신을 구성하고 있고, 상당부분 도움을 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왜곡된 프레임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율신경의 반응과 정서, 기분이라는 결과는 왜곡된 게 아니라 진짜입니다. 그것은 프레임이 정상적으로 작용할 때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정서적 각성은 신체적인 것이기에 왜곡이 낄 수가 없는 상당히 순진하고 진솔한 반응이라는 거죠. 

바깥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데,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볼에 빨개지는 것은 아마 가장 확인이 쉬운 정서적 각성 상태일 겁니다. 일반인도 볼에 빨개지고 달아오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죠. 일반인도 그것 자체를 컨트롤 하긴 어렵죠. 기제 자체는 정상인이라면 다 똑같은 거니까요. 

그렇다면 양미숙과 다른 사람이 다른 점은 뭘까요? 아마 양미숙이 '부끄러움'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겠죠.
볼이 빨개지는 것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때 일어나는 현상이죠. 

양미숙은 남들보다 볼이 잘 빨개지는 신체적 특성도 가지긴 했겠지만, 남들보다 특히 심한 것은 볼이 빨개지는 신체적 반응이기보단, 쉽게 발동되는 심리적 특성, 즉 수치심이었을 겁니다. 수치심을 자주 느끼고,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심각한 것'으로 자각하니까 계속 반복해서 각성이 일어나고 금새 볼이 빨개지게 되는 게 당연하겠죠. 

물론 그 둘은 따로 구별해서 말하긴 어렵죠. 따로 따로 오는게 아니라 동시에 벌어지니까요. 순서도 사실 어느게 먼저 인지 말하긴 어렵겠죠. 그 반응 자체는 거의 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양미숙의 그 심리적 특성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사실 그 부분은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해서 충분히 드러납니다. 양미숙의 배경, 양미숙이 가진 열등감, 양미숙이 원하는 소망, 양미숙이 느낀 서러움. 영화 속 양미숙의 행동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더라도, 양미숙이 느낀 열등감이나 서러움, 관객들도 대략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그게 안되는 분들있다구요? 기다려보세요. 잠깐 따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 양미숙 이해2: 애정망상 + 분열형 성격장애

공감 못할 양미숙의 심리. 분명 있습니다.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DSM-IV의 축1 진단을 따르자면 망상장애의 애정망상 진단을 내릴 수 있고 축2 진단을 내리자면 분열형 성격장애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다지 진지하게 판단한 건 아닙니다.) 

분열형 성격장애는 약간 남들과 다른, 특이한 사람들의 경우 어느 정도 해당될 가능성이 있는데요. 일단 양미숙이 기본적 삶(의식주)에서 남들과 아주 다른 삶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의심이 되구요. 특히 그녀가 타인과 관계하고 싶은 깊은 욕망에도 불구하고 관계기술의 결여와 공감의 결여로 인해 현실에서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신의 머릿 속으로 타인들의 표상을 끌어들여와서 논다는 점에서 분열형 성격장애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아멜리아의 주인공 '오드리 토투'가 나오는 <히 러브스 미>.
로맨틱 드라마로 착각하고 본다면 깜짝 놀랄 영화. 

애정망상은 편집망상, 과대망상, 피해망상, 신체망상 등과 함께 망상장애의 하나죠. 양미숙에게 망상장애를 내리자면 좀 심한 것 아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망상장애는 정신분열증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망상장애는 환각과 환청 등이 없고 다른 지적 기능과 인지 기능은 거의 정상에 속합니다. 때문에 일반인들과 다른 점은 대체로 단 하나, 망상적 사고를 근거없이 맹신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양미숙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그렇게 된 심리 이해하는게 어렵진 않습니다. 그리고 측은해 지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해프닝으로 치기엔 결과가 좀 심각했죠. (같은 소재의 다른 영화, <히 러브스 미>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야기 속 양미숙도 사실 상 스토킹을 한 거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특히 서선생의 관점에서) 정말 무서운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스토커의 죄는 너무 사랑한 것뿐 아니냐고 하지만 누가봐도 로맨티스트도 아니고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서선생에 대한 애정은 학생 때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고, 누군가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관계적 고립 상태에 있는 양미숙으로써는 자기 안에서 끝없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게 되는 데, 대체로 어린 아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게 됩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고 쉽게 오해하죠. 자기 감정을 타인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는 것, 양미숙이 가진 서선생에 관한 애정은 사실 자신의 감정을 타인의의 것인양 '투사'한 결과로써 나온 것입니다. 

특히 동기화된 것들에 대해서만 엄청나게 기억력이 좋아지는 전형적인 망상장애의 패턴을 보이고 있는데요. 그런 특성은 아마 수치심을 증폭시키는 데도 일조했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동기화시키는 것은 자신이 소망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피하고 싶거나 두려워하는 것도 포함되니까요. 아무튼 자기가 좋아하니까 모든 상황들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양미숙은 자기 상태를 알면서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남들에게 충고할 때는 참 충고 잘해줍니다. 그게 또 코미디죠. 근데 망상장애의 경우, 진짜 그럴 수 있을겁니다.

일단 이야기가 코미디였고 결과가 나름의 해피엔딩이라서 그렇지, 현실감을 좀 만 부여하자면 꽤 파국으로 치닫을 수도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냐마나는, <소림축구>의 씽씽이 결국에는 쓰레기주으면서 계속 살았거나, <E.T>가 51에리어에서 해부되었다거나,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약을 먹었다거나... 이런 생각을 해보는 저로써는 말이죠. 흠흠.

주성치는 항상 불쌍한/거만한 연기를 너무 잘하죠.
..아니, 거만한 건 그냥 원래 삶인가?;



◇ 재미없다는 이들 이해하기


일단 저는 아주 재밌게 보았습니다. 저렇게 생각할 것들을 많이 주는데 재미가 없을리 있나요? 아무튼 일단 무척 웃겼어요. 저는 희극지왕은 말그대로 주성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D
이야기 플롯을 보았을 때는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영화, '어바웃 어 보이'와 닮아 있지만, <미쓰 홍당무>는 '코미디' 장르임이 확실합니다. 
한국 코미디 중에서 '주성치 영화'에 비유할 수 있는 영화는 장진표 영화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장진 영화가 '선리기연', '식신'이나 '희극지왕'처럼 은근한 정서적 감동이 곁들어진 주성치 영화라면, '미스 홍당무'는 그리 거창한 담론을 담아내기 보다 캐릭터와 상황, 저질 개그를 이용해서 별 감동 없이 정신없이 웃겨만 대는 예전의 주성치 영화들과 닮았습니다. ('홍콩 레옹'같은) 약간 성인적 개그 요소가 있지만 그건 에피소드 하나에 불과하니까 섹스코미디냐 하면...흠, 그것도 아니란 말이죠.

그렇지만 아는 이들에게서 '재미없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최악이다' '영화도 아니다'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네이버나 다음 영화 평점을 살펴 보면 0점을 주는 이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불쾌한 기분을 느껴서 뛰쳐나왔단 이들도 많은 것 같은데, 제가 관람했던 극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보는 내내 웃음이 터져나왔구요. 중간에 나가거나 하는 사람도 없었구요. 

사실 저도 이 영화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 공감대를 좀 거스르는 부분이 꽤 많다고 봅니다. 그래도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0점을 찍어대는 그런 극단적이고 상식없는 심보는 꽤 거슬립니다. 관점이 다른 건 이해하지만 말이죠. 

아무튼 그렇게 어떻게든 그 심리를 이해해보려는 관점,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르네요.

한 가지는 앞서서 이야기를 했던, 양미숙이라는, 또는 그런 류의 인간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양미숙은 확연한 '신경증 환자'이기 때문에, 주로 비슷한 심리를 경험해보았거나,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신경증'영화에 공감이 안되는 사람은 비슷한 심리를 경험해 본 적이 없거나, 나와 다른 인간들의 삶을 타자의 관점으로 볼수 있는 능력이나 관심이 부족한 거죠. 그건 뭐 그들 탓을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공감 안되면 재미가 없는 거니까요. 

원래 좋아하는 것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싫어하는 것이 뚜렷한 이들은 많이 있죠. 특히 이런 류의 이야기에 관심없는 이들은 꽤 많이 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지구를 지켜라>를 보기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이유는 별 다름이 아닙니다. 어떤 영화가 재미 없는 이유, 그건 그 영화 속 인간들 이야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리 미움 받아도 정말 할말 없는 밉샹 진샹의 전형, 양미숙!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또 아닐 겁니다. 
다른 대안적인 설명은, 어떤 상황에서 이 영화를 보았냐는 겁니다. 저는 아주 편한 친구와 함께 대충 약속 잡고 만나서 신나게 떠들다가 시간 되서 영화보고 나왔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시간은 맘 편하게 즐기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영화 러닝 타임도 딱 적당했기에 지루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데이트를 하러 만난 남녀가 이 영화를 봤다면? 심지어 로맨스를 기대하고 갔다면??
사귀기 전이나 또는 막 사귀기 시작한 연애 초기의 남녀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영화를 본다면,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을까요? 대충 살짝 자극적이고 아주 감동적이되 즐거운 기분을 해치지 않는 영화여야 할 겁니다.

사실 저도 몰랐던 건데, 이 영화 무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요. 왠만한 여성의 노출이나 폭력적 장면, 욕설과 비속어에도 겨우 '고교생 관람가'라는 딱지 붙이는 세상아닌가요? 더구나 중학생이 주인공 중 한 명인 영화에서 '청소년 관람불가'라면, 뭔가 짐작을 해보아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젊은 남녀가 같이 보면 신경이 쓰일 만한 '대사'가 무척 많이 나왔죠. 저는 '라이타'의 러시아 뜻을 들으며 아주 크게 웃었지만, 제 웃음소리만 퍼지고 주변이 상당히 고요하거나 어색한 웃음만 들렸던 걸로 보아, 그 장면과 또 그것과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데이트 남녀들이 상당히 난감해 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들에겐 죄가 없는 것이, 이분들은 아마 이런 영화인 줄 절대 모르고 관람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보면서 웃기긴 했지만 솔직히 약간 놀랍기도 했거든요. 그제서야 '이거 성인용인가?' 하는 생각들고. 

아, 갑자기 생각난건데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영화의 주제를 찾는 강박관념 따위 버린 지 오래지만 주입식 고등학교 국어 교육의 편협함으로 인해, 이야기만 보면 피상적인 주제를 찾으려고 안달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참 많은 걸 보면, 이런 영화를 보면서 시간낭비했다고 느낄 수 밖에 없겠죠. 영화보면서 그런 거나 찾고 있는 사람 보면 저는 솔직히 안타깝습니다.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어바웃 어 보이'와 다를게 뭐 있겠냐마는.


◇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하지?

아마도 데이트 용으로 영화를 고르시는 분들은, 좀 더 숙고를 해서 영화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는 평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고, 어중간한 영화 역시 어중간한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한 영화의 평이 극단적으로 나뉘는 경우가 있는 데, 제가 볼 때 두 가지 경우라고 봅니다. 관객의 취향이 극단적으로 어긋나 있거나, 마케팅에 속아서 완전히 배반당하거나. 

원래 관객은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있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거죠. 그렇지만 누군가 사기를 쳐서, 제대로 알았다면 절대로 보지 않았을 영화를 보게 된다면, 억울함이 생기고 그 짜증과 분노를 어딘가에 토하려고 하는게 또 당연할 겁니다.

사실 <미스 홍당무>의 극단적 평가는 <디파티드>의 극단적 평가보다는 <미스트>의 극단적 평가에 가깝습니다. <디파티드>는 리메이크 영화인 동시에 아카데이 수상작이었던 탓에 대다수의 기대를 모으는 영화였으나, 원작을 경험한 관객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인 경우가 되버린 것이죠. (물론 저는 둘다  재밌었지만, 우열을 가린다면 디파티드쪽을 택하겠죠. 그건 제 취향일 뿐이구요.) 그에 비해 <미스트>는 사실 별로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었고, 이런 영화는 대개 처음부터 호불호가 분명히 갈려서, 어지간하면 안 봅니다. 볼 사람만 보고 아닌 사람은 보지 않을 영화지만, 한국의 전형적인 '왜곡/뻥튀기' 마케팅 수법을 써버린 탓에 흥행은 의외로 성공했지만 관객 평가는 엉망이 되버렸습니다. 

<미쓰 홍당무>가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성인용이다보니 일단 관객이 적었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중딩들이 공감하고, 즐길만한 개그가 많았다고 보는데 말이죠.) 정말 재밌는 영화였기에 흥행이든 평가든 어느 한 쪽은 나름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미스트>에서도 그랬지만, 요즘의 영화마케팅 회사들은 믿을 게 못되니까, 영화를 선택하시는 분들이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까지 이야길 하냐면, 솔직히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제가 정말 재밌어 하고 좋아하는 영화에 대놓고 누군가 '최악'이라고 하면 짜증도 나고,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한심해 보이거든요. '별로 재미없었다.' '나에게 맞지 않았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또는 '나는 이러이러한 점이 너무 싫고, 너무 불쾌했기 때문에 최악이었다'라고 한다면 아 그런가 보다하고 이해라도 하겠죠.

그렇지만! 무턱대고 최악이라고 하면 그건 상식 없는 걸로 밖에 안 보이고!! 
결국 그럼 자기 얼굴에 침뱉는 걸로 생각될 뿐이고!!! 나는 답답하고!! 으악!


◇ 아무튼 추천작!

저 개인적인 올해의 한국영화를 뽑는다면, 많이 보진 않았기는 해도 단연코 <미쓰 홍당무> 뽑겠습니다.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빗나가지 않고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재밌게 유지시켰던 점, 무엇보다 밉샹 진샹의 믹스 자체인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를 잘 묘사해내면서도 사랑스럽게 만들어버린 공효진의 열연, 불쑥 등장하는 친숙한 얼굴이름들에 더해서 웃긴 엔딩까지. 
아주 전형적인 '재밌는 영화'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공효진씨! 앞으로 완전 좋아할 것 같아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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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 (Psycho, 1960)

현대적 서스펜스의 거장이자 스릴러라는 장르를 창조한 것으로 불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 [사이코]가 '사이코 스릴러‘의 고전명작이라는 것에 전 세계 영화 팬 누구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여주인공인 자넷 리가 욕실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자, 고어가 나오지 않는 가장 끔찍한 장면으로 기억되며, 이후에도 수많은 오마쥬를 통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히치콕 감독은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에 매료되어 있었다는데요. [사이코]를 보면, 프로이트의 이론 없이 히치콕 감독이 과연 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정신분석적인 내용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 중에서도 프로이트가 아들러와 융 등의 비판에도 절대로 포기 못했던,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성적 성격 발달 이론'은 [사이코]를 통해서 전형적으로 드러납니다. 그 증거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입니다.


 ◇ 오이디푸스 신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신탁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아들을 낳아서 아폴론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신탁을 받은 결과 아이가 장차 커서 자신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이야길 들은 아버지 라이오스는, 목동을 불러서 이 아이를 산에 데려가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불쌍하게 여긴 목동은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아이를 건네주고, 또 이 목동은 아이를 왕실로 보내게 되어 그곳에서 오이디푸스[각주:1]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지내게 됩니다.
  성장한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받아보니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아, 예언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의 왕실을 나오게 됩니다. 그러던 중 노상에서 어느 무리와 시비가 붙어서 싸움을 하게 되는데 한 노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게 됩니다. 그 후 테베 앞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길을 가로막고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지고 있다는 이야길 듣고, 오이디푸스는 그 수수께끼를 풀어서 스핑크스가 분개하여 자살하게 함으로써 고통 받고 있던 테베를 구출하게 됩니다. 마침 전왕이 신탁을 받으러 갔다가 의문사를 당해서 왕이 없던 테베의 신하들은 새로운 구세주 오이디푸스를 새 국왕으로 추대하게 되고, 오이디푸스는 관례대로 전왕의 부인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며 살게 됩니다.  
베를 잘 통치하였음에도 온갖 재앙이 끊이지 않자, 오이디푸스는 아폴론의 신탁을 듣는데,  전왕을 죽인 자 때문이라는 이야길 듣고 백성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사건을 추적한 결과 자신이 죽인 노인이 전왕이자 자신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라는 것과 왕비인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칼로 찔러 실명시키고 왕위에서 불러나 딸과 방랑을 하다가 세상을 뜹니다.
   


◇ 프로이트와 '성적 발달 단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란, 앞서 말했듯이 정신분석에서 보는 성격 발달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적 성격발달'이라는 이론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프로이트 이론의 바탕은 인간이 '리비도'라는 성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렇게 리비도가 부착[각주:2]되는 신체 부위에 따라 인간 성격이 발달되는 단계를 5단계로 구분했습니다. 프로이트가 어떻게 설명했는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중심으로 살피겠습니다. 

구강기와 항문기를 거쳐서 3단계인 성기기에 이르면 리비도 에너지는 아동의 성기에 이르게 되는데, 이 시기에 아동은 일종의 자위행위와 같은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성기에 관한 강한 호기심과 집착을 보입니다. 이러한 과정과 함께 아이는 이성 부모(남자애는 어머니)에게 강한 애착을 가지면서 이성 부모의 애정을 이등분하는 동성의 부모(남자애는 아버지)를 라이벌로 간주하고 강한 질투심과 경쟁의식을 보이게 되죠.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오이디푸스 삼각관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자애(하단)와 여자애(상단)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대칭적으로 보여준 그림입니다.
이 그림만으로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구조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http://courses.washington.edu/freudlit/oedipus_complex.jpg 가 원 출처입니다.


남자애의 경우, 처음에는 어머니에 대한 강한 애정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강한 경쟁의식을 불태우지만, 이후 아버지의 힘으로 인해 거세불안을 경험하고 어머니의 1차 애정대상이 아버지임을 확인하고 굴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과연 아버지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며,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아버지를 관찰하고 동일시하기 시작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해결해나간다는 설명입니다.


프로이트가 오디이푸스 설명 대부분을 할애한 것은 남자애입니다. 여자애도 비슷한 내용을 적용하여 설명하였지만 여성에게 '남근'이 없다는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리뭉실하게 설명하고 넘어갑니다. 후에 카를 융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여자아이 관점에 대해서 따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만큼 극적인 의미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영화 스토리는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영화 정보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참고하세요.

DAUM 영화 '싸이코' 정보보기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1899

지금부터 전개되는 설명을 잘 이해하기 위한 전제는, 1)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상태에서, 2) 영화 '싸이코'를 관람하고, 3) 마지막으로 저의 글을 읽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 '노먼 베이츠'의 정신분석이므로 최소한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것이 필수전제조건입니다. 
제가 정신분석 전문가가 아니고 기본적인 이론을 단순하게 적용한 수준이기 때문에, 기초적 내용만 이해하셨다면, 설명 자체는 어렵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겁먹지 마시길 ^^;;


노먼 베이츠의 정신분석



 명탐정 프로이트의 데뷔작, 살인의 해석


<사이코>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머리를 쓸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살인의 해석 The Interpretation of Murder>라는 소설은 프로이트와 융을 등장시킨 것으로 꽤 유명한 소설입니다. 정신분석 이론을 몰라도 이야기의 재미는 유지되만, 사건의 실마리를 얻기위해서는 프로이트의 고전적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을 알아두는 것이 편합니다.

<살인의 해석>과 <사이코>의 결정적 차이는 프로이트와 융이 나오느냐 안나오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속 살인 사건의 핵심을 이루는 인간 동기와 그 심리에는 정신분석학이 있습니다. 사실 <살인의 해석>은 제가 보기에 이론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그려낸 것 같아서 그렇게 신기하지도 않고 그다지 재밌지도 않았습니다. ^^; (프로이트도 실상 거의 나오지도 않죠.)

정신분석학 이론의 과학적 근거는 사실 입증하는 노력을 포기했다고 봐야하지요. 또한 치료적 적용 범위에 관해서도 사실 말이 많습니다만, 이미 프로이트와 융의 사상은 철학적인 부분으로 넘어가서 이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나 영화는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관점에서는 정신분석의 이해도 필요한 것으로 봅니다.


 개인적 잡담

정신분석은 사실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론을 피상적으로 다루면 그냥 프로이트 철학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무턱대고 없이 이론을 적용해버리면 망상계 상상계 공상소설을 쓰는게 됩니다.

사실 영화 줄거리나 인물들에 대해서도 마구잡이로 적용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히치콕 감독은 분명하게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분석 이론을 적용해서 인물을 창조해내고 정신분석적 관점의 신경증 이야기를 영화 소재로 즐겨 다루었다고 하기에 한 번 목적과 의도성을 가지고 적용해본 것입니다. 사실 제가 적은 내용은 현실에서는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 나름대로는 노력해서 쓰긴 했지만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기에 이런 해석도 있다고 참고만 해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D

  1. '부풀어 오른 발'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버리러 갈 때 발목을 못으로 박아서 잡고 갔기 때문에 오이디푸스의 발목이 부풀어 있었다고 하죠. [본문으로]
  2. cathexis. 성적 에너지가 특정 대상에 집중하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보통 특정 인물이나 신체 부위에 부착된다고 보았으며 그 변화 과정이 성적 발달단계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feveriot
영화벌레님 블로그에 갔더니 재미난 게 있어서 저도 해봤습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수퍼맨이 나왔길래 뭔가 해석을 잘못했다 싶어 다시 번역해서 해보니

배트맨이... ^^;; 하늘 나는 거랑 몸쓰는 걸 체크 안하니 수퍼맨이 줄더군요.



악당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투페이스가 나왔습니다. 투페이스 하비보다는 원조 투페이스에 가깝지만요.  그래도 다른 것보다는 낫달까...




테스트는 이곳에서 할 수 있습니다.
히어로: http://www.thesuperheroquiz.com/
빌런(악당): http://www.thesuperheroquiz.com/villain/

Posted by feve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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