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이 난 줄 알았던 타블로 사건이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일명 타진요 패거리는 지난 주말 있었던 일종의 학력 인증에도 끄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꼬투리에 꼬투리를 잡는 양상입니다. 혼자서는 못할 짓이지만 여러명의 의심 많은 이들이 모여서 무얼 잘못하나 실수하나 꼬투리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며, 갖은 새로운 의혹들을 제시해내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의심병 입니다. 그렇지만 그들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인터뷰 상에서 말하는 걸 보면 겉보기에 정신 말짱한 사람들 같습니다. 카페 주인장이라는 왓비컴즈는 이야길 들을수록 단순 편집증 수준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자기 정체를 알면 이명박이 자기에게 인사를 할 거라는 둥, 현실감 떨어지는 자기에 대한 과대망상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 이외에는 나름의 논리에 빠져서 타블로에 대한 의혹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지부조화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자면 그 의심의 정도가 보통 수준을 넘어서서 심각한 수준이니 만큼 온라인에서도 그들은 확연히 드러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댓글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도 남들 의견에 대해서는 도무지 듣지를 않으며, 자기 자신의 생각만이 맞고, 타블로를 방어하는 이들은 타블로 빠거나 생각의 수준이 떨어지는 이들이며,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고 언젠가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실제 그들의 논리가 비약적이거나 완전히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점을 요약하면 인지적 융통성이 결여되어 있고, 아집에 빠져 있으며, 남의 논리는 무시하고 자신의 논리를 우선하며, 주변을 살피지 않고 지나치게 논쟁을 조장하는 모습으로, 한 마디로 '광적'이라는 말이 딱 맞게 느껴지는 양상입니다.

그들의 결론은 일종의 음모론의 일환으로써, '타블로(와 가족)가 스탠포드 대학과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학력 사기를 쳤다"라는 것인데, 초등학생 고학년만 되더라도 이 음모가 현실화 될 것에 대한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 그 어려운 점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본인들의 의심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남들보다 뛰어나게 허점을 탐지해내는' 추리관찰력에 기반하고 있다 믿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지만 남들 보기에 본인들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우습고 뻘짓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죠. 지나치게 낮은 확률의 음모에 집착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가설이 틀렸을 수 있는 단서들도 지극히 많이 퍼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전부 타블로가 세상과 언론을 속이기 위해 흘리는 단서들일 뿐이라고 가치를 지극히 축소시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단서들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작위적이기 때문에 '논리'와 '합리'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애초에 아니라는 거죠.

더구나, 과연 보통 사람들이 그럴 능력이 없어서 저렇게 집착을 안할까요? 그런 짓을 해봤자 남는 것도 없고 본인에게 도움도 안되고 도무지 쓰잘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런 이득없이 그저 사회 도덕과 법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타블로가 진실을 밝히는 것(자신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 어떤 이득이나 가치를 위해 모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경건하고 중요한 작업일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타블로'같은 양심없는 나쁜 놈들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받았으며, 이런 것이 용인되는 사회 역시 성실하고 순진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거대한 음모론적 존재로 생각할 것입니다. 자신들은 이 땅의 부도덕을 벌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모인 선구자들로써, 다른 사람들이 무심하고 무식할 뿐 언젠가 '악당 타블로'가 어떤 방식으로는 패배를 인정할 날 이 올 것이며, 사람들이 자신들이 노력한 것을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계속 열심히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진실은, 타블로가 "네, 제가 사기꾼이었습니다. 스탠포드 들어간 거 뻥이었어요."라고 인정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타블로가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 단순한 논리,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와 "꺼리길 게 없으면 인증을 해라"를 순환하기 때문에, 아무리 해명을 해도 도무지 지치질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타블로가 포기하고 입을 다무는 것조차 승리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지치고 지쳐 도피하거나, 잠적하거나, 심지어 자살을 한다고 해도, 그들은 경건한 승리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후안무치"를 내세우면서요.

여기서 잠깐 끝없는 의심과 피해의식을 특징으로 하는 편집성 성격장애에 대한 묘사를 보시겠습니다.



편집증적 성격장애 (Paranoid Personality Disorder)의 주요 특징

1. suspicious(의심많은): 다른 사람의 분노, 악의, 이기적인 동기의 가능성에 대해서 과도하게 경계한다.

2. cynical(냉소적인): 모든 게 불공평한 세상 때문이라는 가설를 자주 사용한다.

3. rivalrous: 지나친 양심성.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4. 잘못된(wronged)/질투하는(jealous): 사회적 관점에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 자신이 처한 상황은 자기에게 적합하지 않은 불충분한 결과로 생각하고, 불공평한 환경에 의한 희생자로써 자신을 바라본다.

5. 분노: 그릇된 이유로 분노를 경험하고, 그것을 쫓아 과도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6. guarded(조심성 있는): 자기-보호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모든 것에 비밀주의를 보이고, 다른 사람의 호의를 피하며, 호의를 그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꺼린다.

7. rigid(융통성 없는): 새로운 자료를 토대로 하여 관점을 수정하지 않는다; 이전 관점과 일치하는 자료만 선택적으로 주목하여 기존 관점만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8. self-contained(터놓지 않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통해서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려 하지 않는다.

9. intolerant of ambiguity(애매모호함에 대한 인내력 부족):  애매함을 참지 못하고, 여러가지 그럴듯한 설명들 중의 하나에 지나치게 고정된다. 거기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며 그 가설에 모든 것을 투자한다.

10. humorless(유머 없는): 과민하고, 완고하다. 모든 것을 심각하게 여긴다.  혼자서 웃을 수도 없다.

11. conspicuous(과시적인):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이자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끄는 대상으로써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12. self-important(자부심이 강한): 자기 자신의 경험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중립적인 사건을 개인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한다.

13. self-righteous(독선적인):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거만하다.

14. self-justifying(자기정당화): 자신의 실수나 미숙한 행동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독특한 곤경에 의한 것으로 해명하거나, 다른 사람의 악의에 찬 의도의 결과로써 합리화한다.





어떤가요? 보면서 뜨금하신 분들 있으신가요?

뭐, 저는 타진요가 완전히 남의 이야기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블로 사건에 수십만 네티즌들이 한 때나마 낚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말할게요. 저 역시 블로그에서 퍼다나르는 자료를 보고 타블로가 인증을 해야한다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발빠르게 대응하지 않는걸까 답답하기도 했어요. 가입까지는 안했지만 의혹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으로 그럴 듯했습니다. 당시에는요. 이후 이슈화 되고 증거들이 나오면서 제 개인적으로는 이미 끝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인증이 충분히 되었다 생각한 것은 신문에서 졸업증명서를 떼었을 때 였습니다. 왜냐면 그때 처음 블로그에서 봤던, 타진요들이 요구하던 것 중에 졸업증명서도 있었거든요. 저로써도 상당히 인지부조화를 느꼈습니다. 내가 순간이나마 혹했었던 이야기가 틀렸다고? 그냥 타블로가 스탠포드생이 아니라고 밝혀지는 게 제 마음을 편하게 만들 것 같았었죠. 그렇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타블로 스탠포드 이야기는 결론이 난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저와 달리 왓비컴즈와 타진요들에게는 그것으로는 충분하지도 않고, 아무래도 자료들도 조작된 것 같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었죠. 일부는 저처럼 단순 인지부조화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블로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던 것 자체가 불합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타블로가 재미로 그랬든 방송이라 그랬든 오바하고 부풀렸던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인증이 계속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던 것이든 어떤 것이든, 타블로의 증명에 의해 여러번 필터링을 걸치고 남아있다는 것은, 거기에 있다가 벗어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남아있는 사람들만의 결정적인 특성들, 그들 사이의 유대감을 더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 '편집증적 성격장애'의 특성들은 정말 그들의 행동을 잘 설명해주는 말들이 아닌가 합니다.

타진요를 딱히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각자가 이제 한번 쯤은 스스로에게 질문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못 믿게 만드는 타블로가 문제인지, 못 믿는 자기 자신이 문제인지.

ps. 이러나 저러나 이 사건에서
누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할 만한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feveriot

사회공포증이란 증상에 대한 정의가 진단적으로 확립된 게 오래 되지 않은데, 역사적으로는 오래된 진단입니다. 요즘은 사회불안장애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데,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회공포증'이라고 하면 '사회적 상황 전반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흔히 일반인들은 '광장공포증'과 '사회공포증'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사실 광장공포증과 사회공포증은 완전히 다릅니다. 사회공포증이란 말은, 'Social phobia'가 번역되어서 '사회공포증'으로 번역되어 이렇게 사용되고 있지만, 좀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려면 '사회적 장면에 대한 공포증'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광장 공포증도 '광장에 나서는 것에 대한 공포증'이 될 것이구요.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흔히 겪는 것으로 발표 불안이 있습니다. 발표 불안, 무대 공포증, 발표 울렁증 등 여러가지 용어로 표현되는데, 결국은 발표 상황의 과도한 긴장과 불안, 불쾌감을 표현하지요. 물론 나서서 주목받고, 특히나 자신의 수행이  중요한 당락으로 평가되는 경우라면 상당한 불안을 초래하는 게 당연합니다. 다만 이러한 긴장과 함께 파국적인 수행에 대한 부정적 예상이나 실제 수행 중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어떤 신체적 반응이나 행동 등이 나타난다면 증상으로 볼 때 역시 사회공포증에 포함되는 게 맞고 서구에서 생각하는 사회불안도 이쪽이 더 가깝습니다. 

한편 대인공포증은 '사람을 상대하는 게 두려움'을 뜻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회공포증에 포함됩니다. 사회공포증이 사회적으로 나서거나 주목받는 장면을 는 그냥 사람을 상대할 때의 불안을 이야기 합니다. 대인공포증이란 말은 일본에서 처음 나왔는데, 딱히 자신이 주목받는 게 아닌데 사람들과 관계할 때의 불안이 극심한 경우가 일본에서는 많았기에 서구에서 정의한 사회불안과는 조금 다른 종류로 보고되었습니다. 즉 조금 더 동양에서 잘 나타나는 사회불안입니다. 

대인공포가 더 잘 알려진 것은 기존의 '사회공포증'이라는 말이 대중들에게는 마치 '광장공포증'과 같은 의미로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비슷한 문화권인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공포'를 '광장공포'와 비슷하게 생각해서 아주 기능이 떨어지는 심각한 질환이라고 생각하기에 사회공포증이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이라 보네요. 진단명의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이죠.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신질환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소심해서'라고 생각하거나 'A형이라서'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진단이 안되니까 문제를 고치려는 노력에서 자꾸 헛수고를 하게 됩니다. 스피치 학원을 다니거나, NLP 치료를 받거나, 최면 치료를 받거나, 발표 연습을 더 열심히 하는 등.
그렇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죠. 아마 미니 트라우마 경험이 축적될 수록 불안은 더 커지게 될 겁니다. 

대학생 중에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쉽게 우울증으로 진단 내리거나 오래되어 왔으면 성격적인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현상학적으로는 사회적 불안이 개인 삶의 핵심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불안이 항상 우울보다 선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하기 때문에 우울하게 된다는 경로는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본인들도 우울하기 때문에 '우울해요'라고 호소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원인이 불안일 수 있고, 우울증과 공병률이 상당히 높은 사회공포증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미국 유병률에 비해 우리나라 유병률은 매우 낮게 나타나 있죠.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우리나라 쪽이 더 흔하다고 봅니다. 혈액형 성격에서 A형이 소심하다는 게 잘 알려진 건 국민들의 혈액형이 A형 분포가 높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소심한 사람들이 그저 많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feveriot


◇ 공포증, 과연 남 이야기?

미국에서, 특정 공포증의 평생 유병률은 2.5% 또는 6~23%, 사회 공포증의 평생 유병률은 2~19%라고 합니다. 유병률의 변동폭이 이렇게 큰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공포증의 기제는 특별한 것이 아니며, 본래는 삶에 필수적인 적응 기제이지만  과잉 작동하거나 오작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보니 일반인들에게서도 흔하게 발견되어 유병률이 전체적으로 높아지게 됩니다. 

2. 그러나 '흔하다'는 질병의 성격상 또한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어서, 환자의 많은 수가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거나 또는 오더라도 일차적으로 다른 장애를 호소하여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병률의 변동폭이 커지게 됩니다. (즉, 공포증은 1차 장애보다는 2차 장애나 동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25세 이전 어린 시절 또는 사춘기에 일어나는 공포증은 자연스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약한 편이고 위기 대처능력과 판단력도 떨어지는 상태이므로, 그 시기에 위협에 대한 주요 대처는 회피와 도피, 즉 만나기 전에 미리 피하거나 도망가는게 상책이기 때문이죠.   

무서워하는 것 하나 씩은 가지고 있는 것이 어린 시절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때문에 그 시기에 나타나는 공포증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고,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둔화되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기도 합니다. 일종의 '통과의례'로 취급되는 거죠. 

바꿔 말하면 공포증 학습은 중년기나 노년기에 비해서,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상대적으로 더 잘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성인 이후에는 대부분의 일반적 공포 자극들에는 충분히 적응된 후거나 둔감화된 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인들도 공포증에 새롭게 걸리는 경우가 있으나 보통은 어린 시절이후 둔화된 공포증이 다시 발현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완전히 새로운 공포를 습득한 걸로 보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고소공포증에 걸린 주인공이 나오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 VERTIGO



특히 사회공포증의 경우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에 가장 발병률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고 주변 평가에 예민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자에게 특정공포증은 우울증을 제외하고 가장 흔한 정신장애라고 하며, 남자에게도 우울증, 알코올 남용을 제외하면 가장 흔한 것이 사회공포증이라고 합니다.

주변에서 벌레만 보면 소리를 지르는 사람,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 공포영화를 보지 못하는 사람, 어둠 속에 혼자 있지 못하는 사람 등은 많이 보셨을 겁니다.





저 자신의 어린 시절만 생각해도 참 안쓰러운 기억이 많습니다.

밤에 화장실에 혼자 가지 못하던 기억, 개에 쫓겨 놀라서 울며 도망가던 기억, 이후로 개만 보면 가슴이 쿵쾅대던 기억, <전설의 고향>을 보고 무서워서 불 켜고 자던 기억, 놀이공원서 바이킹 타다가 눈물 짓던 기억 등이 남아있네요. 으하핫.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는 나름의 적응기제를 발달시켰기 때문에 지금은 어린 시절의 추억일 뿐이죠.

어린 시절 우연히 보고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고전 공포 영화, '여곡성'. 어른이 된 지금은 덜무서울 것 같아 보질 않고 있습니다.



◇ 공포증, 저의 이야기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현재 저는 이토준지를 비롯해서 공포미디어의 팬을 자청하고 있습니다. 만화책도 거의 수집해뒀고, 만화 원작을 각색한 영화들도 대부분 보았죠. 

발간되자 마자 구입해 읽었던 이토 준지의 '신 어둠의 목소리: 궤담' 입니다. 고딩 때는 자기 전에 이토준지 공포컬렉션을 한 권씩 읽고 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재밌는 꿈을 꾸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서운 이야기도 좋아해서 '더링'님이 운영하시는, 국내 최고의 괴담블로그인 <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에도 자주 들리구요. 공포영화를 보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매우 신이 납니다. 가끔 남들은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날 때도 있죠.

자, 어릴 적 그렇게 겁 많던 아이가 어떻게 하다 이리 됐을까요?



◇ 공포증 극복, 저의 이야기


저같은 경우 스스로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한 결과입니다. 저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소심하고 겁이 많았는데요. 혼자 화장실도 못가고 낯선 곳에 혼자 있으면 울어버렸으며 전설의 고향을 무척 무서워 하고, 놀이기구도 못 타던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사회적 관계에서 예민해지면서 사회 공포가 시작되었는데,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버벅 거리며 우물쭈물 거렸고 말도 못 걸었습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만 보면 얼굴이 빨개졌기 때문에 고개를 숙여버리고 걸었고, 사람이 다섯명 이상인 곳에 가면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매우 부끄러웠고 스트레스 요인이었기에, 이것들만 극복하면 삶이 바뀌고 마음이 개운해 지고 자신감이 충만해 질 것 같았죠. 이러한 행동들이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함께, 그다지 불안해 할만한 근거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고,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즐긴다고 생각하자!'라고 믿고 계속해서 자발적으로 도전했습니다. 어떤 의미로 자신을 궁쥐로 내몰았습니다. 그렇게 학창시절 공포영화 호러영화를 즐겨 보았고 성인이 되서는 약간의 고어영화도 호기심에 살펴보기도 했죠.

공포물 같은 경우는 사실 금방 해결이 된 경우입니다. 애초에 호기심이 많았으니까요. 놀이공원은 고딩 이후 해결 되었구요. 사람들이 재밌어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재밌게 생각하고 싶다는 소망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불안 같은 경우, 사회적 관계의 기회가 늘어나면서 해결되었고, 현재는 예전같은 극심한 불안과 우울을 동반한 신체 증상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로부터 너무 뻔뻔하다는 이야길 들어서 문제지만요. ^^;

그렇게 계속해서 무서운 대상이나 피하고 싶은 상황들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공포 자극들에 대해서 둔감해지고, 오히려 그것들에 담겨진 재미와 즐거움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이제는 자극에 너무 둔해진 것 같아서 그 점이 더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공포 영화들을 봐도 무덤덤한 경우가 많구요. 손가락 다쳐서 피를 봤을 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진정되더군요.

 

◇ 그래서, 치료는?


이전까지 약물 치료를 포함한 여러 가지 기법들이 있었지만, 실제적 노출 기법이 체계화된 이후에는 이 기법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공포증 치료 기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다음 글에서, 노출치료를 중심으로 해서 치료 방법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저 자체가 임상적으로 공포증을 경험했다가 탈출한 경우이기 때문에, 다음 글에서는 최대한 제가 겪었던 불안과 공포들의 사례들을 적용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예고했던 글인데도 참 많이 늦었네요. 11월에 써둔 글을 지금 올리는 제 심정도 무겁습니다. 아무튼 기다리셨던 분들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 글을 확인하실 분들은...

[psychology : taste/pathologic : clinical] - 공포증: 난.. 그냥 무서울 뿐이고! (1)
[psychology : taste/pathologic : clinical] - 공포증: 난.. 그냥 무서울 뿐이고! (2)

Posted by feveriot

◇ 공포증 왜 생길까?

이전 글 공포증: 난.. 그냥 무서울 뿐이고! (1) 에서도 살펴보았지만, 공포증이라고 이름 붙는 종류는 어마어마합니다. 물론 그 많은 공포증들이 공식적인 진단명인 것은 아닙니다. 공식적으로는 특정공포증, 사회공포증, 광장공포증의 형태로 나눠지며, 이하에 세분화된 공포증들을 포함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아무튼 그렇게나 많은 공포증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 공포증은 조건형성의 결과

학습 이론을 통해 공포증의 발병을 설명하려고 했던 연구자들의 의견을 따르자면, 공포증은 개인이 가진 생활기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조건형성의 결과입니다. 학습 심리학자들은 파블로프와 스키너의 개념을 토대로 인간의 지식 습득을 '조건화'로 설명합니다. 이에 따르면 공포나 불안 반응 역시 인간이 가진 정상적 기제로서 자신에게 위협적인 환경적 자극들을 선별하고 회피하는 지식 습득의 결과입니다. 단지 그 기제가 과도하게 작동하거나, 남발되거나, 통제 불가능 할 경우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죠.

이야기가 길어지니 간단하게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바로 행동주의 심리학자 Watson이 행한 실험으로, Little Albert 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실험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아이가 Albert에요.)

처음, Albert에게 종소리를 크게 울려줬더니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동시에 왼쪽에서 보시다시피, 흰쥐를 풀어놨을 때는 처음에는 전혀 무서워 하지 않았었죠. 그 다음, 흰쥐를 보여주면서 종소리를 땡땡 울려줬습니다. 그렇게 흰쥐가 제시될 때마다 큰 종소리를 울리는 것을 반복해서 '연합'시켰더니, 어느새 Albert는 흰쥐만 봐도 무서워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는 겁니다. 또한 그 뒤에는 흰쥐와 유사하게 생긴 것들, 예를 들어 토끼, 흰 코트, 흰 솜, 산타클로즈 복장의 흰 수염까지 무서워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왼쪽: 알버트와 흰 생쥐. 
아래: 실험을 묘사한 장면

이것은 파블로프로부터 기인한 '고전적-반응적 조건형성'의 좋은 사례이자, 자극 일반화의 논증이기도 합니다. 또한 '공포증'을 어떻게 학습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이와 반대되는 양식의 치료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던 거구요.

이러한 조건형성 원리를 따르자면, 공포증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이 왜 그렇게 다양하게 존재하는지 잘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공포 조건형성 반응에서 원인이 되는 '자극' 들은 어떤 것이든지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Little Albert 실험은 어떤 것은 분명하게 설명해주었지만, 모든 공포증이 직접적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연합될 만큼 자주 접하지 않거나 단 번에 공포증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어떻게 된거냐?"입니다. 왜냐면 위에서 설명한 학습 원리를 따르자면, 자극과 반응은 여러 번에 걸쳐서 짝지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연합은 커녕 자신이 경험한 적도 없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은 왜냐?" 였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뱀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실체가 없더라도 (귀신을 본 적이 없더라도) 무서워서 덜덜 떨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파블로프와 스키너 중심의 이론을 가지고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해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때 마침 학습이론에 새롭게 대두되던,  Bandura의 사회학습 이론 덕에 이런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 공포증은 관찰학습의 결과

Bandura의 사회학습 이론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고 단지 보고 듣고 하는 것만으로도 학습이 가능하다는 관찰학습, 즉 모델링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면서 기존 학습 심리학자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습니다.

Bandura가 행했던 관찰학습 실험.
어른이 인형을 때리는 비디오를 본 아이들(남아, 여아)은 어른의 행동을 거의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는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죠.

관찰학습의 명백한 실험 증명을 통해, 공포증 역시 같은 기제로 설명 할 수 있었는데요. 특히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 TV가 보급되면서 그와 관련된 사회적 현상들은 이러한 이론을 증명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재밌는 일례로, 한 남성이 히치콕 감독에게 편지를 썼는데 영화 '싸이코' 때문에 자신의 딸이 샤워를 할 수 없게 되었다며 히치콕 감독에게 항의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싸이코'의 끔직한 샤워 씬을 보고는 샤워 공포증을 학습하고 말았던 거죠. (히치콕 감독은 이렇게 답장했다고 합니다. '드라이클리닝 하시죠'.)


◇ 공포증은 진화적으로 준비된 것

관찰학습 역시 모든 걸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한 여지가 있었습니다. 관찰학습 역시 어느 정도 반복적으로 제시되어야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또 다른 실험을 통해 살이 붙습니다. 그것이 Seligman의 준비성 이론과 Reiss의 불안 민감성 이론입니다. 이와 관련된 동물 실험을 Cook과 Mineka라는 연구자들이 행했습니다.

한 원숭이가 장난감 악어나 장난감 뱀을 보고 크게 놀라 도망가는 장면을 촬영해서, 이 비디오를 다른 원숭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결과는 앞서 설명되었던 관찰학습의 원리와 일치했는데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적은 없았지만 비디오를 통해 다른 원숭이가 놀라는 것을 본 원숭이도 장난감 뱀에 대해서 공포증을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는 무서워하지 않았었죠.)

이것은 관찰학습의 강력한 효과를 보여준 실험입니다. 단 한번 비디오를 본 것만으로 이 원숭이들은 장난감 뱀을 무서워하게 되었으니까요. 여기서 끝나면 이는 관찰학습 이론의 지지밖에 되지 못할 겁니다. 

추가 실험에서 장난감 뱀과 악어 대신, 장난감 토끼나 조화를 사용해서 원숭이가 크게 놀라 도망가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이 비디오를 역시 다른 원숭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원숭이는 장난감 토끼나 꽃에 대해서는 공포증을 학습하지 않았습니다. 이 경우 아무리 보여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토끼나 꽃 같은 대상들은 대체로 공포학습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결과이기는 하지만, 연구자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공포증의 선택적 형성은 풀어내야할 고민거리였습니다. Seligman은 이러한 선택적인 공포증 학습 현상을, 경험과 학습 이전 단계에 존재하고 인간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기체의 ‘준비된 본성’을 가정하여 설명했습니다. Reiss는 그것을 개인 특정적으로 만들어진 ‘불안민감성’으로 설명한 것이구요.
(불안민감성은 쉽게 말해서 공포증에 개인차가 존재하는 이유가 개인 각자의 불안 민감성이 다르기 때문이란 설명입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벌레, 동물, 옥상 등에 대해서는 쉽게 공포증을 잘 학습하면서, 총과 칼, 전기믹서 등에는 공포증을 학습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벌레는 사진만 보여줘도 싫지만, 총 사진을 보면서 무서워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무엇이 인간에게 더 위협적인지를 판단했을 때, 명백하게 더 위험한 쪽은 칼이나 총입니다. 그러나, 벌레나 동물, 높은 곳에 대한 공포증은 아주 흔하디 흔하지만, 총 공포증, 칼 공포증, 전기믹서 공포증... 이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아주 희귀합니다.



이외에도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통해 공포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편도체의 활성화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편도체의 기능을 통해 볼 때 공포증은 진화적인 의미를 가졌음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결국 공포증의 발병 이유를 요약하면, 1) 직접적 경험을 통한 학습; 2) 간접적 경험을 통한 학습; 3) 진화적으로 존재하는 본성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공포증의 치료와 관련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feveriot

◇ 공포증?

‘공포증’이라고 많이 들어보셨죠? 그런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공포증은 단일한 장애가 아닙니다. 아주 여러 가지의 세분화된 공포증들이 많이 있죠. 그런 공포의 대상과 증상에 따라 공포증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사회공포증, 광장공포증, 특정공포증이죠.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알아보기에 앞서, 전반적 의미의 공포증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공포증의 영어 단어인 Phobia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공포의 신 포보스 Phobos의 이름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Phobia는 공포의 대상이나 상황을 나타내는, 즉 공포증을 설명해주는 단어의 끝에 붙어 하나의 ‘공포증후군’ 용어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인 사회공포증social phobia, 광장공포증agoraphobia 등과 더불어, 폐쇄공포증claustrophobia, 고소공포증acrophobia 등이 있습니다. 이 용어들이 어떤 것을 나타내는지 금새 짐작할 수 있죠. 이외에도 학교공포증, 시험공포증, 혈액공포증, 어둠공포증, 동물공포증, 질식공포증, 생매장공포증 등 무수히 많은 공포증이 존재합니다. (http://phobialist.com/에 가시면 공포증의 광대한 목록을 보실 수 있습니다.)

폐쇄공포증 환자들의 기분을 짐작할 만큼, 폐쇄된 공간에 대한 공포를 묘사했던 영화. <큐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느끼는 불안의 정체는,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직면했을 때 일어나는 것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이나 대상’을 미리 회피하도록 반응하게 되거나 공포 반응을 일으키게 되는 증상을 동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동반되는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행동적 증상이 사회적, 직업적, 일상생활적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자신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때, 공포증으로 진단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은 위에서 알아보았듯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공포증 환자가 과도하게 무서워하는 ‘상황이나 대상’은, 대체로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공포증 환자가 그것을 허위로 보고하거나 환상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답답하고 황당할수도 있겠지만, 환자가 경험하는 실제적 현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단지 그 경험이 남들과 다른, 주관적이고 개인 특정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환자들이 느끼는 이차적 고통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 일반인과 공포증 환자의 차이?

예를 들어, 벌레 공포증에 걸린 여성이 있다고 해볼까요? 여성들의 경우에는 벌레를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 곤충학자나 애완용으로 기르지 않는 이상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위에서 예로 든 분은 다른 양상에서는 모두 다른 일반인과 차이가 없는 정상인입니다. 그렇지만 집에서 바퀴벌레가 한 마리 발견되었을 때, 아마 경악과 함께 엄청난 신체항진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고, 벌레 한 마리를 죽이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며, 아예 집에서 뛰쳐나와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여성이 흔하긴 하지만, 이 사례에서 보이듯이 극단적인 신체적 각성과 행동적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겁니다. 대개는, 어떻게든 약을 뿌려서 죽이던가 하겠죠. 그렇지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무서워하는 대상에 대면해서는 '도망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는 무기력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미스트>의 한 장면. 저런 거미가 실제로 존재하면 거미 공포증이 안생길 수 없겠죠.

이러한 차이가 일반인들과 공포증 환자를 구분하는 차이입니다.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실제로 본다면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오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시트콤처럼 웃길 수도 있고, 뒤치닥거리를 하다보니 피곤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개인이 경험하는 주관적 세계에서, 고통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주변에서 이 공포증 환자를 나무라거나 근거가 불충분하고 정도가 과하다는 식으로 상대해주지 않는다면, 이차적 고통이 유발 될 수 있습니다. 

일차적 고통으로 벌레에 대한 공포반응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이 여성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고통을 호소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위축될 것이며, 자신이 문제 있고 이상하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심리 상태가 꼬이기 시작하면 만성적인 신경증의 지름길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게 됩니다. 그 뒤엔 공포증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들이 꼬리를 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포증의 유병률이 왔다갔다 하는 이유입니다.

대개, 누구나 무섭고 두려워하는 대상과 상황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단지 그로 인한 두려움과 스트레스 정도가 과도하다면, 공포증으로 진단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공포증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가기 - <공포증: 난.. 그냥 무서울 뿐이고! (2)>

Posted by feveriot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정신과 진료명을 바꾸는 것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향후 바뀔 가능성이 꽤 높아보입니다.

기사에 나온 것처럼, 분명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전히 정신과 정신의학, 정신보건에 대해서 긍정적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실 저 어릴 적 때만 해도 친구가 정신과에 다녀왔다는 이야길 들으면 그 친구가 무척 무섭게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심각한 무언가 '병'을 가졌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요. 요즘 아이들의 경우엔 어떨까요? 아니, 요새 학부모들은 '정신과'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정신과를 보는 두 가지 대조적인 관점이 드러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패치 아담스>

제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얼마 전 한 시립 소아청소년 정신보건 센터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정신보건 사업의 일환으로써 검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에 참여했었는데요. 

센터에서 하는 일이 일종의 정신보건 복지 사업이었기 때문에 무료로 검사와 치료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1차 검사에서 선별된 학생들의 가정으로 검사 협조 연락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러한 종류의 검사나 진료, 치료, 상담 등에 쉽게 응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계속 심리학쪽 지식에 파묻히다 보니 이쪽 과업을 일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게 더 어려워졌거든요. 제 추측으론 절반 정도나 응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과 달리 2차검사가 요구되는 학생들 중 대략 70%정도가 검사에 응했고 절반 이상이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방문한 학생들이나 부모님들도 어느 정도 걱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방문하고 나서 돌아갈 때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가시는 걸 보며 우리나라에서 정신보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고, 앞으로도 변화될 수 있겠다는 것을 분명히 체험했습니다.

물론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정확한 통계를 낸게 아니라 인상에 기초한 것이므로 근거가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일부 연락을 받은 부모들이나 가정에서는 이상하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폭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었습니다. 그 경우 알았다고 정중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오히려 자기들이 전화를 끊지 않고 매달리며 욕을 해대는 경우가 태반이었죠. 심리학을 안해도 이런 경우 생각나는 건 이 말밖에 없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여전히 심리학과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오해를 동반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노력해볼만한 여지와 가치가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정신과 진료를 받아본 것은 아닙니다만, 심리적인 맥락에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상황적 스트레스로 가득찬 나라에서는요.

개인적으로는 정신과 진료가 보험에 적용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상담도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보험을 적용할 수 있게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나 법안이 마련되었으면 좋겠구요.

무엇보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이 나 또는 내 아이에게 '정신병'이라는 '딱지'를 붙인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정신과 역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지, '격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란 점을, 많은 분들이 알게 되길 기원합니다. 물론 점차로 그렇게 되리라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Posted by feveriot


◆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

21세기에 인류를 멸망시킬 지 모르는 가장 강력한 질병 중의 하나가 무언지 아세요?

예상하셨겠지만 바로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대부분의 자살 사고 원인이 되며, 타살이나 문제 행동에도 관련되고, 스트레스, 신체적 질병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입니다. 이건 겁줄려고 만들어낸 '도시괴담'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연구들이 축적되고 검증되며 밝혀진 '사실'입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전파하는 그 파괴력에 비하면 오히려 경각심이 낮은 경향이 있죠.[각주:1]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우울증'은 사실 공식적인 진단명으로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진단범주가 체계화되고, 증상의 다른 양상에 따라 상세하게 분화되면서 ‘기분장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름의 진단 범주가 나타났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주요우울장애’, ‘기분부전장애’, ‘양극성 장애’ 그리고 ‘우울성 성격장애’입니다. (물론 세세하게 보면 더 많습니다.) 








대표적인 우울성 
성격 어린이, 

이카리 신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우울증은 이것들을 통틀어서 말하는 우울'증후군'을 의미하기도 하고, 가장 심한 주요우울장애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실질 가까이에 있고 해당되기 쉽지만, 동시에 스스로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바로 '우울성 성격장애'와 '기분부전장애'입니다. 때문에 이 두 가지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볼까합니다. 스스로가 우울하다고 느껴지시는 분이든 아닌 분이든 너무 부담갖지 마시고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우울성 성격장애의 기원


우울성 성격장애(depressive personality disorder, 이하 DPD)는 다양한 상황 하에서 시작되는 우울한 인지와 행동패턴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이 핵심특성인 정신장애입니다.


우울성 성격장애의 역사는 20세기 초의 유명한 질병분류학자 Kraepelin에게서 기인합니다. 그는 사실상 거의 최초의 본격적인 임상심리학자로,Kraepelin은 조발성 치매, 조울증 등의 현대적 진단 범주(요즘말로 바꾸면 각각 정신분열증, 양극성 장애의 시초가 됩니다.)를 고안한 사람입니다. Kraepelin은 '우울증'과 구별되는 ‘우울한 기질(depressive temperament)’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일생 동안 지속적인 우울, 슬픔, 무기력, 절망, 낙담으로 인한 정서적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죄책감과 자기 비난을 쉽게 사용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기술하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인생에서 생기가 부족하고 쉽게 피로하며 매사에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다고 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울한 기질’은 유전적이며 잘 변화하지 않는 특성이었죠. 

Kretschmer라는 학자 역시 ‘우울한 기질’에 대한 Kraepelin의 견해와 대체로 동일한 관찰을 보고하였으나, 주요 기분에 대해서는 ‘만성적인 슬픔’으로 해석하기보다 단지 남들보다 덜 생기 있고 덜 즐거워하는 경향을 보일 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Kraepelin과 Kretschmer 두 학자 모두 이러한 성격을 ‘기질’, 즉 유전적 원인과 천성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기질이 우울증을 발달시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후 정신병질자(psychopathy) 및 여러 성격장애 진단을 최초로 제안한 Schneider라는 학자는 ‘우울성 정신병질자(depressive psychopathy)'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들이 침울하고, 회의적이며, 자신을 내세우길 꺼려하며, 매사에 걱정스럽고,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마치 제 이야기 같습니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특히 그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남들이 느끼는 행복이나 기쁨을 오히려 피상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신 Schneider는 그것의 원인을 ’기질‘로써 설명하려 하지는 않았으며,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후 DPD는 몇몇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DSM-III와 DSM-III-R에서 우울증과 구별되는 기분부전장애(dysthymic disorder) 범주에 포함되었고, DSM-IV에서는 기분부전장애와도 구별된다는 증거로 인해 정식진단 범주에서는 제외되고 DSM-IV 부록에 포함되었습니다. (부록은 대체로 진단용이기보다는 연구용으로 사용되는 진단기준입니다. 현재 연구 중이라는 이야기죠.)


DPD는 주로 성인초기에 나타난다고 하며, 광범위한 우울성 사고와 행동 양상을 보이게 되며 주로 다음 형태로 나타납니다.


1) 특별한 일이 없어도 대체로 낙담, 침울, 불행하며, 행복감과 기쁨의 부재,
2) 무가치감, 낮은 자존심, 극도로 낮은 자기평가,

3) 빈번한 반추적 사고[각주:2] 경향,

4) 타인과 미래에 대한 전반적이고 만성화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믿음,

5) 매사에 흔하게 드러나는 죄책감과 후회.

  

주요우울장애나 양극성 장애, 기분부전장애에는 해당이 되지 않으나, 위 특징이 드러난다면 DPD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때요? 이러한 경우에 해당되는 분들 주변에 꽤 있는 것 같지 않으신지요? 


◆ 우울성 성격장애와 주요우울장애/기분부전장애 차이

 

사실 DPD와 변별해 내기 어려운 것은 우울증, 즉 ‘주요우울장애’ 보다는 오히려 ‘기분부전장애’ 쪽입니다. ‘단일 우울’ 기분장애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주요우울장애이고 좀 덜 심각한 것이 기분부전장애인데요. 주변에서 흔히 우울하다, 우울증 걸렸다고 이야기 하는 경우는 사실 증상의 다양성이나 심각도 면에서 주요우울장애에 해당되기 보다는 그보다 좀 더 낮은 단계인 기분부전장애나 DPD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향후 악화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DPD는 만성적인 성격적인 특징이다 보니 대체로 자신의 상태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성격적 특성을 스스로 바꾸려 하는 노력이 적습니다.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더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죠. 그 점이 기분부전장애와 구별되는 점입니다. 기분부전장애는 좀 더 ‘일시적인 질환‘으로 꼭 성인 초기에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더 심각한 주요우울장애는 눈에 띌 정도로 심각한 장애이며, 인지장해와 최종적으로 자살 시도 및 자살 실현까지 나타나는 경우죠. 대부분의 자살 시도는 주요우울장애 수준에 이르러서 드러납니다.

 

또한 주요우울장애나 기분부전장애는 신경학적 문제가 있는 경우가 흔하며 그로 인해 자신이 불편감을 느끼는 게 흔한데 비해, DPD는 신경학적 문제나 불편감이 없거나 혹시나 있더라도 자신에겐 익숙한 것이기에 만성화 되어 있고 대단하게 생각하질 않기 때문에 자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신경학적 문제라는 것은 뇌 신경전달물질 상의 이상을 이야기합니다. 심각한 우울증의 경우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약을 투여하게 되는 거죠.)

 

◆ 마치며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물론 실제 진단 시에는 더 복잡하며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합니다. 말은 쉽지만 사실 만성적인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를 알아내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울은 즐거움, 기쁨, 슬픔, 분노처럼 기본적으로는 정상적인 정서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단순히 우울함을 느낀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준이나 정도를 초과했을 때 문제라고 보는 것이구요. (상담을 할 때 기분점수란 것을 흔히 이용합니다. 인터넷에도 우울증 테스트같은 게 있으니 자신의 기분 상태를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행여나 자신의 상태가 많이 거론된 것 같아 ^^;; 걱정이 되시는 분들은 반드시 진료기관을 찾아가 검사 및 상담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지역에 정신보건센터가 있으니 거리감이 느껴지는 병원보단 그쪽으로 문의하시는게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음이 관계된 질병은 말 그대로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일입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명을 알아야하는 것처럼, 모든 문제의 치료와 극복의 시작점에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덧붙여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패배적 성격장애에 대해 알고싶으면!
[psychology : taste/pathologic : clinical] - 자기패배적 성격장애: 우울성 성격장애와의 차이

  1. 연이은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으로 우울증의 위험성이 부각되기 전에 작성되었던 글입니다. [본문으로]
  2. repetitive thought. 반복적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집착적 사고를 지칭합니다. 긍정적 영향도 있지만 대체로 부정적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feveriot


◆ 마조히즘 성격?


피학적 성격장애(masochistic PD)라고도 불리는 자기-패배적 성격장애(self-defeating PD)는 DPD와 매우 유사한 장애입니다. 피학증(masochism)은 가학증의 상대적 개념으로 요즘 들어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말입니다. 가학증과 반대로 성적 쾌락을 위해 자신을 괴롭히는 기괴한 행동을 이야기하죠.

그러한 양상이 일반적인 관계에서 나타날 때 피학적 성격장애, 또는 자기-패배적 성격장애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적 가학증처럼 성적 피학증은 DSM-IV에 성도착증 범주에 여전히 존재하지만, 자기-패배적 성격장애는 연구가 아직 부족한 실정으로 정식 진단에선 누락되었습니다.


간략히 개괄하자면 1) 불필요한 상황에서의 과도한 자기-희생, 2) 타인의 호의와 친절에 대한 무시와 거절, 3) 달성될 수 있는 기회와 목표에 대한 지연과 포기, 4) 타인으로부터 무시, 거절, 분노를 유발하는 행동양식, 5) 즐거움과 기쁨에 대한 무의식적 회피 및 상처받음과 패배에 대한 무의식적 반김 등입니다.

분명히 진단 기준은 다르지만 당사자가 경험하는 정서적인 양상은 자기-패배적 성격장애와 DPD의 특징이 대체로 비슷합니다.

 

누가 생각나시나요?
저는 조제가 생각납니다. 
자세한 건 다르지만요.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낙담, 무기력, 비관주의, 즐거움의 상실 등을 자초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DPD들은 오히려 직업적으로는 성공적인 이들이 꽤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우울하다고 하잖아요? 또 그들은 공유되기 어려울지는 몰라도 자신만의 즐거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몰두하다보면 성취가 나타나기도 하는거죠.

 

그렇지만 자기-패배적 성격장애는 대체로 다양한 영역에서 실패의 패턴을 보입니다. 그 사람이 가진 실제 능력과 무관하게 주로 자신들이 그런 상황을 자초해버리지요.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남들로하여금, 또는 상황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도록 주문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DPD는 타인에 의한 처벌에는 저항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인, 즉 다시 말해 '자기-고문적' 성격인 거죠.

 

상담을 통해 자기 안의 패배적 성격을 극복하고 세상을 향해 뛰쳐 나가는 이야기,
굿 윌 헌팅.
우울성 성격장애와 주요우울장애의 차이를 알고 싶으면!
[psychology : taste/pathologic : clinical] - 우울성 성격장애: 주요우울장애와의 차이

Posted by feveriot

◆ 사디스틱 성격?

반사회성 성격장애와 유사하지만 다른 것, DSM-III에는 있었지만 DSM-IV부터 사라진 것이 가학적 성격장애(sadistic personality disorder, 이하 SPD)입니다. 타인들에게 잔인하게 대함으로써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행동을 말하는 가학증(sadism)은 프랑스 소설가 Sade의 이름을 빌려 만들어진 용어로, 요즘에는 꽤 잘 알려진 용어일 것입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하죠? (사진을 넣으려고 sadism검색해봤더니... 끔찍한 그림들만 나오더군요.)


본래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기이한 행동에 해당되는 말이었으나 성적 관계가 아닌 일반적 관계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드러남을 알게 되면서 성격장애 진단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자기애적 가학 성격의 소유자. 새디스트 창이!

 SPD의 특징은 1) 우월성을 목적으로한 잔인한 행동과 협박, 2) 타인에 대한 비하 및 학대 3) 타인의 고통으로 느끼는 즐거움 등으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에게 이러한 특징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려하거나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죠. 여기까지 보시면 아실겁니다. 진단 기준이나 설명하는 말은 다르지만, 타인이 경험하는 정서적 측면이나 본인의 행동 양상에서 가학적 성격장애와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꽤 비슷하게 드러난다는 것을요.

◆ 가학적 성격 누가 있을까?


주로 역사상의 독재자와 학살자들이 여기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겠죠(진시황, 징기스칸, 히틀러, 스탈린 등등). 역시 추정이지만 잔인한 연쇄살인범의 경우에도 해당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표적인 가학성 성격의 학살자,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

 가학증의 원조 개념인 성적 가학증은 성도착증 범주로 DSM-IV에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SPD는 진단 유용성의 결여와 진단 남용의 가능성 때문에 공식적 진단에서는 사라졌습니다. SPD에 적용이 되는 경우라면 이미 APD에 적용이 될 터이니 따로 SPD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타인에게 잔인하게 대하고, 비하하고, 공격적으로 대하는 ‘가학적인 성격 특징’이란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대신, 아마도 그러한 특징이 법적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드러난다면, 반사회성 성격장애나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이코패스와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차이를 알고 싶으면!
[psychology : taste/pathologic : clinical] - 반사회성 성격장애: 사이코패스와 어떻게 다를까


Posted by feveriot

◆ 반사회성 성격? 사이코패스?


성격장애의 역사 중에 가장 기원이 오래된 것이 바로 반사회성 성격입니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설명은 고대 그리스 문헌에까지 올라가는데요. 'psychopath' 라는 용어는 본래 일반적인 성격장애를 말하는 용어였는데, 언젠가부터 ‘반사회적 정신병질자’를 지칭하게 된 것은 그것이 성격장애의 대표적 표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이코패스'란 말을 유행하게 만든 영화, '검은집'의 포스터. 로샤검사를 연상시키는 포스터에서 보듯이 심리학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한 마케팅임다.
일반인들의 오해 중 하나가 '사이코패스=연쇄살인마'라는 것인데, 그런 오해를 제공한 데에는 '검은집'도 책임이 있다고생각합니다.

DSM-IV에서 경험적 증거를 추가해 2000년 발행한 개정한 DSM-IV-TR부터 반사회성 성격장애(APD)라는 명칭이 확정되었으며 증상적 특징과 질병적 특징을 연결 지었지만, 반면 범죄적 행동에 대한 판단에서는 이전에 비해서 기준을 약화시킴으로써 기존에는 범죄자나 범법자들 위주로 진단하던 것에 비해 좀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성격장애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3배 정도 많으며, 사회적 경제적 수준이 낮은 도시지역에서 높은 편이구요. 특히 교도소 수감자의 절반이상(50~75%)이 APD라고 합니다.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ADHD라고 불리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또는 품행장애를 진단받았을 경우  반사회성 성격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꽤 높다고 하구요. 대충 생각해보더라도 왠지 당연할 것 같은 내용들이죠.

  

반사회성 성격장애에 대한 진단기준은 DSM-IV-TR과 ICD-9-CM에서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는데요,  둘을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해하는 행동 패턴이,

1) 체포 근거가 되는 사회적 규범의 무시,

2) 이득을 위해 타인을 속이는 반복적 사기성,

3) 낮은 충동 인내와 사회적, 직업적 장면에서 지속적인 무책임성,

4) 타인 기분에 대한 공감 결여와 자기 행동에 대한 반성 결여

등 으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물론 몇 가지 특징적인 면을 간추린 것이며 실제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 판단을 한다면 좀 더 복잡한 기준을 따르게 됩니다. 심각도 역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도보다 훨씬 높을 것입니다. 사고 좀 친다고 무조건 진단 받는 건 아니라는 거죠.  

 

반사회성(또는 반사회적)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이후 줄여서 APD)는 정신장애진단편람 4판 개정판(DSM-IV-TR)에서 성격장애 범주에 포함된 ‘정신장애’입니다. 국제질병분류 10판(ICD-10)에는 비사회성 성격장애(dis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는 이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위 사진은 본문과 '절대' 무관합니다. 부시대통령 방한기념 사진을 올리고 싶었을 뿐.



◆ 반사회성 성격장애와 사이코패스의 차이?


본래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정신병질자(psychopath), 사회병질자(sociopath), 혹은 반사회적 성격(dyssocial personality)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귀에 낯설지 않은 사이코패스란 말은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용어적 기원인 것이죠. 물론 연구자에 따라 조금 다르게 보기도 하지만요.

 

‘사이코패스(psychopathy)’에 대한 연구는 Hervery Cleckley와 Robert D. Hare에 의해서 주로 행해졌습니다. Cleckley는 반사회성 성격장애에 대한 기준과 구별되는 사이코패스의 고유 특징을 공식화한 사람이고, Hare는 <진단명 사이코패스>와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란 책을 지은 사람입니다. Hare는 정신병질 진단 체크리스트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알려진 사이코패스 진단용으로 사용한다는 질문(자매가 있었는데 장례식장에서 멋진 남자를 만났다..로 시작되는)
은 거짓이지만, Hare의 체크리스트는 위 책에 소개되어 있으며 인터넷 상에서도 올려져 있을 겁니다. (혹시 찾아서 해보셨나요?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차피 자가 진단이므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참고로 저는 40점 만점에 32점인가 나왔어요 ^^;;; 한참 짜증날 때 했더니..) 
 

처음에 소개한 것처럼 psychopath는 APD의 용어적 기원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반사회성 성격장애와 사이코패스는 사실상 다른 진단으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유죄판결을 받은 중범죄자의 75~80%가 APD 진단에 해당되는데 비해, 사이코패스 진단에는 25%만이 해당된다는 연구가 있었거든요. (나머지 25%가 사이코패스란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부2'의 알 파치노와 '스카페이스'의 알 파치노. 각 영화에서의 역할로 보았을 때 누가 APD고 누가 사이코패스일지 맞추실 수 있으실지?


반사회성 성격장애와 사이코패스를 구분하는 것은 "위험함을 얼마나 잘 숨기는가"입니다.

얼마나 '티 안나는' 가면을 쓰고 있느냐라고 할까요.

반사회성 성격장애도 일반적으로 매력적이며 활발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분명 일반인들보다 위험한 냄새, 즉 '티'가 납니다. 그에 비해 사이코패스는 일반인보다 오히려 더 유능하고, 호감있으며, 타인에게 비춰지는 자기 인상 관리에 철저함으로써 절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글을 쓸 때 쯤 유행해서 넣어봤던; 조인성의 사이코패스 CF 한 장면.>

 

Hare의 책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에서 보듯이 사이코패스는 더 이상 도심 어둑한 곳에서 칼을 들고 서있지 않고, 오히려 친구처럼 다가와 자신조차 당하는지 모르게 이득을 취해 버리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 정말로 직장 상사가 사이코패스?


제 사견이지만, Hare박사가 지나치게 사이코패스란 용어를 광범위한 영역에 사용함으로써 '일반적인 성격특성'과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DSM-IV-TR에서 사용되는 정신장애 공식 진단 기준이지만, '사이코패스'는 공식 진단 기준도 없으며 체크리스트도 사실상 '경향성' 판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준이 사실상 애매모호하죠. (소시오패스sociopath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다른 차원의 용어라기 보다는, 사이코패스보다 덜 심각한 상태를 소시오패스로 부르고 있는 듯한데, 둘이 분류되는 조건이나 그 정도를 구분하는 기준도 없습니다.)


더구나 용어가 미디어에 선정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개념적 정의도 제대로 내리지 않은 채로 '이슈만들기'나 '겁주기'식으로 멋대로 용어를 '미친놈'이나 '천인공노할 놈'을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질적으로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사이코패스'란 말은 우리가 흔히 언급하던 '사이코'란 단어에 섞인 부정적 감정가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쓴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이처럼 용어에 대한 여러 정보들이 뒤섞임으로써 '사이코패스'란 말은 함부로 사용하기 더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더 쉽게 사용하게 되어버렸네요. 그 때문에 '혈액형 심리학'처럼 별 고민없이 누군가를 낙인찍어서 욕하는 용도가 되어버린 듯.)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반사회성 성격장애과 사이코패스는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진단 기준의 변별성으로 인해, 이제는 두 연구를 통합하려는 움직임보다 각자의 기준으로 독립적인 연구를 행하려는 움직임이 우세한 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둘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정도는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가학적성격장애와의 차이점이 궁금하시면!
[psychology : taste/pathologic : clinical] - 가학적 성격장애: 사이코패스와 어떻게 다를까?

Posted by feveriot


◆ 모든 게 우울증 탓인가?


탤런트 최진실 씨의 안타까운 죽음과 함께, 세상이 다시금 우울증[각주:1]의 위험성에 관심 갖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임상심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우울증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경각심을 일깨우는 순간이 항상 늦습니다. 또한 언젠가부터 매해 반복되어 온 일련의 연예인 자살 사건이 항상 '우울증'이란 쉬운 원인을 핑계로 구체적인 원인과 대응책을 덮은 채로 슬쩍 넘어가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우울증'이 원인이 되면, 그건 그 개인이 스트레스에 취약했던 것뿐이고 그 개인의 잘못으로 전가해버릴 수 있으므로 주변인들의 죄책감이 줄어들고 다른 요인들의 책임감도 적어지죠. 정말 편한 설명입니다. '우울증'이라는 딱지 뒤에 숨어있는 인과적 요인들이 다 무색해지네요. [각주:2]

 

그래서 이제부터 그걸 좀 걸고 넘어지려고 합니다. 진짜 원인, 주변의 책임들이요.[각주:3]

 

'우울증'은 바이러스나 세균, 기형 유전자 등으로 유발되는 생물학적 질병이 아닙니다. 물론 유전적, 신경학적 기전은 있습니다. 있을지언정 환경과의 상호작용과 인과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이지, 어떠한 특정한 인자가 머리 속에 제멋대로 들어와서 숨겨져 있다가 이유없이 터지는 게 아니란 것입니다.

 

좀 더 명확히 말해서 '주요우울장애'로 진단되는 우울증은 어떤 현상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어떤 현상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걸리면 자살하고 싶어진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신병리학과 질병분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자살하고 싶어지는 강한 충동을 느끼는 경우를 우울증으로 진단한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4]

 

다시 말해 '자살'이라는 결과로써 보았을 때, 그 사건의 원인을 우울증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쉬우며,  누군가가 죽은 이유를 '우울증'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이후에 또 다른 어떤 이의 '자살'을 예방하는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노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책임감 없이 공허하게 울리는 메아리'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대체 몇 명의 연예인, 아니 '현실에 좌절한 인간들'이 얼마나 더 죽어나가야 그들에 대한 예방책이 생기고 현실이 개선될 수 있을까요?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고 애도하고, 슬퍼하고, 아쉬워하면서 어째서 그런 일이 또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어째서 예방책을 마련할 생각도 하지 않는 걸까요? 왜 항상 신문과 뉴스에서 잠깐 다루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말아버릴까요?

  

<결국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점점 잊혀지고 있네요.>



◆ 무엇이 문제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저 개인적인 해답은 결국 '관심'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1)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지 않는 삶, 2)  대중적 인기와 함께 일희일비하는 불안정한 직업 생활, 3) 미디어들로부터 쏟아지는 악성 루머들, 4) 장난삼아 연예인을 괴롭히는 인터넷 악플러들, 5) 그외 개인적 인간 관계로 인한 어려움들.

 

스타들이 가진 이러한 고충에 관해서 많은 이들은 관심 가지지 않습니다. 언론과 TV는 항상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즉시만 관심 갖습니다. '비극'과 '죽음'조차 대중문화에 있어서의 본질은 가쉽이라는,  변하지 않는 슬픈 현실이 참담하게 반복됩니다. 거기에 휩쓸려가는 독자와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너무할 정도로 그들에 대해 한 인간으로써 관심 갖지 않습니다.

 

왜 관심 갖지 않을까요? TV 속 연예인과 스타들이 자신과 같은 걸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처럼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의 심볼이고, 하나의 캐릭터고, 하나의 상품이죠. 그렇지만 그건 TV 속 연예인들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손에 꼽는 주변인 일부를 제외하면, 친구, 스승, 제자, 선후배, 동료, 애인, 심지어 부부자녀 끼리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그건 대상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시작됩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공감을 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결국 제대로된 관심을 가져보지 못했기 떄문입니다.

 


◆ 우울증 걸린 이들의 관점 알기


자, 이제부터 약간의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Q: 만약 아는 사람이 우울하다고, 죽고 싶다, 죽을 것 같다고 심각하게 고민을 토로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대체 뭐가 힘들어?    2) 나도 힘들어.   3) 힘내, 잘 될거야.   4) 네 가족을 생각해.

 

넷 중에 어느 게 더 나은 대답일까요?


 

 

결론부터 말해서 어느 답이든 그리 좋은 답은 아닙니다.

 

1) 그게 뭐가 힘드냐는 건 누가 봐도 극심한 몰이해의 전형이죠. 

2) 힘들다고 하는 사람에게 자기도 힘들다는 식의 대꾸 역시 몰이해의 하나입니다.

3)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역시 좋은 대답은 아닙니다. 

4) 좀 더 책임감을 가지라는 의도였을 겁니다. 역시 나쁜 대답 중의 하나입니다.

 

앞선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답을 길게 설명 하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예를 들어 이야기 하겠습니다.

 

주요우울장애에 걸린 사람들이 빠져있는 정신적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자면, 어둠 속에서 까마득히 높은 절벽에 가까스로 손가락 몇 개를 걸친 채로 매달려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 딱 5초 동안,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세요.

 

자, 이제 무얼 하실 건가요? 

당연하게 어떻게든 소리를 지르고 사람을 찾아 도움 요청을 하시겠죠?  

겨우 한 사람이 도우러 왔습니다. 당장 도와줄 거라 기대했던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대체 뭐가 힘들어?"[각주:5]

"나도 힘들어."[각주:6]

"힘내, 잘 될거야."[각주:7] 

"네 가족을 생각해."[각주:8]

 

...자, 이제 좀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의 그 기분이 좀 공감되시나요? 이젠 제가 왜 몰이해라고 했는지 아시겠죠? 

 


◆ 우물에 빠진 이들을 건져올리기


실제 상황이 절벽에 매달린 것은 아니니,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현실의 더 다양한 맥락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도움의 시작은, 그 상황을 이해하는 것부터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위의 대답들은 그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몰이해적 반응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위기에 빠졌음을 파악조차 못하는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자신의 상황처럼 느끼고, 진심으로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기원하고 도와주려하는 마음이 있음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대체로 그들은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그들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믿죠. 그러나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것은 마지막 구원요청입니다. 눈으로 자신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없으니,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말로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주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구원요청의 희망은 사라지게 되며 무망감[각주:9]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이후 자신의 상황을 회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어 현실에 절망하고 스스로 절벽을 쥐고 있던 손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주변인의 잘못 역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합니다만, 저는 그 말도 반대합니다. 그건 심각한 우울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우울 기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울한 기분 한 번도 경험 안해본 사람은 없죠. 그건 누구나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임상적 수준의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일단 일반인들도 대체로 경험하는 생활 상의 우울한 기분은 기분점수가 평상시보다 -10점 정도 된 상태에 불과하지만, '병적인 우울증'에 걸려본 사람은 -100점, -200점의 기분이 있다는 걸 압니다. 때문에 정말 심각한 상태인 사람들이 우울하다고 해도(-100점), 듣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 판단하여 이야길 합니다(-10점). 서로 완전히 '다른 우울상태'을 가지고 이야길 하게 되므로 한 쪽은 심각한데 한 쪽은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행여나 타인의 기분 상태를 짐작하더라도 그것은 분명히 '어두워보이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 어려워 합니다. 재밌고 즐거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즐거워지는 것 처럼, 우울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답답하고 불쾌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바이러스'는  아닙니다만, 기분 장애 환자를 도우려고 하다보면 실제로 '전염'되는 경향이 있으며, 돕는 사람도 그 어둠 속에 빠질 위험을 경계합니다.



◆ 언제까지 책임을 '우울증'에게만 전가할 것인가?


이처럼 주요우울장애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노력은, 깊고 어두컴컴한 우물 속을 내려가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상당한 정서적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테고, 도우려는 사람도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질 지도 모릅니다. 절벽에 매달린 사람을 구하는 일보다는 안전하겠지만, 마냥 쉬운 일은 또 아니란 것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아무리 가까운 가족과 친척, 친구라도 심각한 상태의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전문적인 노력은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 단계에서 우울증에 빠진 이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1.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을 발견하기

2. 일상에서 지지하고, 위험 상황에서 지켜주기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증인지 모릅니다. 흔히 우울하다 생각하고 우울하다 말하지만, 우울 장애란 것은 갑작스럽게 기분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각주:10] 조금씩 조금씩 기준점을 낮게끔 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위험한 상태'라는 자각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저 약간 어두운 우물에 빠졌다고 생각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 시점에서야 우물 밑바닥에 왔음을 깨닫게 되고, 그 시점이 사실상 절망적 상태이기 때문에 이미 늦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주변에서 기미가 보인다면, 심각하게 고려를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울증의 과대평가로 인한 손해는 아주 약간의 시간낭비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우울증의 과소평가로 인한 손해는 또 다른 절망과 큰 슬픔이 될 지 모릅니다.

 

또한 언제든지 뒤에 지지하고 격려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 먹고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면서라도 자꾸 자꾸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살 위험이 분명하게 파악되었다면 모든 노력을 다해서 자살을 방지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살 시도 후에 죽음을 피했다면, 원망을 하기보다는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걱정한다는 것을 일관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물론 전문가에게 연결을 할 시간이 있다면, 무엇보다 전문가나 전문 시설(병원, 상담소, 정신보건센터)에 의뢰를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은 일반인이 전문가를 따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도 가까운 사람들보다 때로 도움이 덜 될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은 약물을 먹으면 나을 수 있고, 잘못된 인지를 수정하는 지지적인 치료를 통해 나아질 수 있지만, 주변인과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그 사람을 돕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금 우울증에 빠지거나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우울증이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임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기본적인 관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악순환을 끊는 가장 큰 역할,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어야 겠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주인공을 돕는 조연이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 배역은 가족과 동료들이 맡게 되겠지만,

연예인들에게는 시청자와 팬, 네티즌들이 그 역할을 대신 맡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명분으로 '사회적'이고 '환경적' 요인이 섞인 복합적 문제를 한 개인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로만 단순화 시켜 몰아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졌으면 합니다.

  1. 이 글에서 우울증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기분부전장애나 우울성 성격이 아닌, 가장 심각한 상태인 주요우울장애Major Depresion Disorder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미리 밝히자면, '우울증은 중요하지 않다'나 '우울증보다 다른 중요한 게 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울증의 진짜 원인과 우울증에 걸린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들을 좀 더 공감하고 도움 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본문으로]
  3. 여기서 말하는 주변의 책임이란, 특정인을 중심으로 가족 및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며, 막연하게 '네티즌'의 책임을 묻는게 아닙니다. 약간은 추상적 맥락에서 개인을 둘러싼 '환경'을 지칭하는 것이니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본문으로]
  4. [본문으로]
  5. 상황을 이해할 생각이 없다는 극심한 몰이해적 답변입니다. [본문으로]
  6. 자기 일에 바빠서 상대를 챙길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었을 수록 우울증에 빠진 당사자는 이런 이야길 들었을 때 무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으로]
  7. 상황을 좋게 볼만한 여유가 전혀 없는 당사자로써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위로로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으로]
  8.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충분히 여러가지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가족문제도 포함되어 있구요. 하지만 점점 스트레스에 압도당하게 되므로, 이런 말은 그들에게 결코 긍정적으로 해석되는 말이 아닙니다. [본문으로]
  9. hopeless, 즉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절망despair이 희망의 끈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임에 비해, 무망은 희망의 지푸라기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본문으로]
  10. 갑작스럽게 기분이 변하는 기분장애를 양극성 장애, 흔히 칭하는 말로 조울증이라고 합니다. 극심하게 좋은 기간이 있다가 극심하게 떨어지는 기간이 반복되는 양상을 나타냅니다. 양극성 장애와 우울증은 구별되는 장애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feveriot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