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의 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5.02 셔터 아일랜드 vs. 살인자들의 섬 (3)
영화 셔터 아일랜드 vs. 소설 살인자들의 섬

소설을 본 지 오래되어서 (2006년 경) 잘은 기억이 나지 않고 세세하게 비교를 하긴 어렵네요.

그렇지만 확실하고 눈에 띄는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게 영화의 결론 부분입니다.
제가 받은 인상에 의하면, 그 결말로 인해서 전달되는 주제가 확연히 달라졌기에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일단 스포일러 조심. 경고했습니다 !!!!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 전체와 결말까지가 주인공의 슬픈 운명에 초점에 맞추고 있습니다.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친 정신세계가 연극이었음이 밝혀지는, 그리고 주인공이 그렇게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던,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트라우마, 그러한 운명에 놓인 정신세계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이를 전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정신분열자'임에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트라우마'가 있다"는 생각을 전달합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통찰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다시 현실 뒤의 자기 세계로 도망가 버릴 수 밖에 없었던, '트라우마의 크기'를 전달합니다.

독자들이 주인공의 상태에 대해서 공감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 아마 결말 부분에서 의사의 웃음이 그렇게 슬프게 다가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결말이 약간 다르게 되어 있더군요.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려주는 측면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가던 것과 달리, 영화에서는 자리를 뜨기 전 의사에게 한 마디를 던집니다. 대충 "live as a monster or die as a good man?"인데, 번역은 "괴물로 살겠느냐, 선량한 사람으로 살겠느냐?"라고 생각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을 보신다면 어느 누구나, 이 시점에서 주인공의 현실 지각이 멀쩡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 스스로가 로보토미 시술을 받게 될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그것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약하자면, 소설이나 영화나 결말에서 공통적으로 정신분열 환자들에서의 '통찰 없는' 양상을 잘 보여줍니다.
소설의 결말이 통찰 없는 상태로 다시 돌아간 상황에서 결말을 맞이하는 것에 비해서,
영화에서의 결말은 통찰 없는 상태로 다시 돌아간 듯 보이지만, 마치 자신이 그것을 선택한 듯이 그러한 연기를 한 것으로 보이게끔 행동하고 결말을 맞이합니다. 당시 주인공의 구체적 상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만 가능하겠지만 최소한 그 말을 한 순간의 정신 상태는 현실에 기반하여 이야기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때문에 사실은 주인공은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지만 여태까지 잘못을 되돌릴 수 없으므로 '괴물로 살기 보다 좋은 사람으로 죽으려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구나, 또는 '괴물로서 반복된 삶을 왔다갔다 하며 사느니 그냥 죽으련다'  하는 생각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괴물로 사느니 그냥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적 한 일면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영화 속의 이러한 양상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정신분열적 세계관을 잠시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나 주인공은 심각한 정신분열병 환자입니다. 정신분열병 환자들이라고 해도 항상 환각이나 망상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현실감이 돌아오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자신이 했던 일들을 부끄러워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죠. 트라우마랑은 다른게, 사고과정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열병 환자들의 질병 기원이 트라우마에서 오는 게 아니듯이, 영화 속 주인공도 사실은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게 됩니다.

때문에 주인공은 정신적 외상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현실을 도피하게 된 원인을 가져다 붙이고 살아왔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고과정의 문제라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러한 점을 인정하지 않으며, 거의 고려조차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환자 스스로가 이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까요?

대개의 경우에는, 이를 부인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기제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점점 사고과정에서의 문제 영역을 만성적으로 넓혀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더 커다란 괴물이 되어 갈 것입니다. 절대로 자신의 본질적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려 할 것이며 이로 인해, 주관적 세상은 괴물이나 악마는 전혀 없고 평화와 정의만 가득한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괴물'을 언급하였던 걸로 보아, 주인공은 자신의 상태가 '자기 스스로 만들어온 괴물'이란 점을 깨달았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약하자면 소설의 주제가 '외상으로 인해 환상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슬픈 인생과, 정신질환자들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미약하게 나마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신적 외상에 대해서 외과적 수술을 시행하는 당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다면,

영화의 주제는 '정신분열자가 자신의 사고과정에서 문제를 직면한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대답으로서, 영화는 '아마도 잔인한 외과적 시술을 받아들일 정도 일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정신분열증 환자가 도피하는 주관적 세계의 크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과 비교할 때, '괴물(=정신분열)로 사느니 제정신일 때 그냥 정신적 죽음(=절제수술)을 선택하겠다'라는 식으로 가버려서, 정신질환자들의 정신세계를 괴물로 비유하며, 공감대를 거부하여 버립니다.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디카프리오의 트라우마나 환각이 원작을 리얼하게 반영하긴 했지만, 그 심정에 공감하긴 어려워 보였는데, 결말을 보면 마지막까지 관객들이 디카프리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으려 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결말도 나름 괜찮긴 했지만 소설이 전체적으로 몰입도가 더 높고 이야기의 긴밀성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원작의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으면서도 결말을 다르게 잡았기 때문에 주제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그토록 선명한 남아있던 에필로그의 그 쓸쓸한 인상이,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도 않고 마치 뻔한 반전 트릭을 위해 나오는 것처럼 비추어 지는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Posted by feveri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5.23 12:16 신고

    소설을 읽어야만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 2010.06.02 00:06 신고

    고리타분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 2018.08.05 00:53 신고

    휼륭한글 잘읽었습니다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