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화려한 3D 영상 부작용, 우울증에 자살충동 호소


얼마전에 올라왔던 기사인데, [아바타]를 보고 난 후 관객들이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호소할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보도에 인용된 네티즌들은 영화를 보고 다음 날 온 세계가 무의미해졌다며 판도라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자살마저 하고 싶다고 호소했답니다.

이 정도라면 당연히 영화가 어느 정도인지 호기심이 들게 마련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혹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미 충분히 잘 나가고 있는 영화라서 그런 마케팅 방법이 필요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정말 보고 싶지만 매진이라서 볼 수가 없는'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무슨 이런 마케팅이 필요하겠습니까.

영화를 예매를 하긴 했었으나 솔직히 '외계 종족'의 이미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스토리 플롯도 별로 호기심이 당기지 않았서 보지 말까 생각도 했는데, 호기심을 당기는 기사에 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매 후 1주일을 기다린 끝에 결국 소문도 많던 [아바타]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에 대한 감상에 앞서서, [아바타]를 '경험'하고 난 후 제 기분을 묻는다면, '뭔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복잡한 심정'을 느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3D 영화 증후군'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3D 입체 영상 자체가 개개인에 따라서는 구토나 어지러움, 두통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와 동행했던 이 역시 어지러움을 호소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로인한 고통은 없었고, 또한 3D로 인한 입체감 경험은 적었기에 3D로 보지 않아도 어차피 비슷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3D 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입체감보다는 CG의 이질감을 줄여주는 느낌을 주는 듯 했습니다. 분명한 건 다운 받아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였습니다.

아무튼 저 역시 '복잡함 심경'은 분명 느꼈으나... 위 기사에 언급된 네티즌들의 이야기가 공감되느냐 묻는다면,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하고 싶습니다.

우울? 자살충동? 뭐 어떤 영화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슬픔이나 자살 충동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공포영화를 보고 슬플 수도 있는거고,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무서울 수도 있는 것이며, 로맨틱 영화를 보면서도 죽고 싶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올드보이]를 보면서는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미스트]를 보고 극장에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고, [희극지왕]을 보면서 한 시간 동안 울었지만, 그건 제 나름의 독자적인 경험인 거고 공감이 안될 여지가 큰 것입니다.

뭐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게, 솔직히 전혀 세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영화 속 '판도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말로 못할 복잡함'을 좀 풀어서 설명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부터 스포일러 입니다-------



제가 느끼는 약간의 혼동은, 저는 계속해서 한 인간 입장에서 영화를 보려고 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종반부에 더더욱 그랬죠.

일단 저는 사실 '판도라'에 발을 딛고 나서, 그곳이 낙원이라는 생각이 한번도 들질 않았습니다. 할레루야 산을 보게 되었을 때, 그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면서 신선이 살만한 절경이라는 생각은 들었죠. 그런데 인간이 살만한 곳이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네, 그곳은 온전히 나비 종족의 것입니다. 각 개체는 자신들이 진화해 온 환경에서 진화를 계속 해 나가는게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을 필요야 없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어느 사이 구도가 인간 vs. 나비종족의 대전투가 이뤄질 듯한 플롯이 나타나고, 평화적인 방법에 대한 희망은 깨지고 결국 전쟁이 이뤄지게 됩니다. 그러한데 주인공은 나비종족 편입니다. 또한 정의와 도리는 원래 주인인 나비종족에게 있습니다. 인간들이 일을 벌이는 동기는 단순한 '경제원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미 판도라 종족의 독립, 인간에 대한 징벌으로 결말이 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종족들을 결집시킬 때 가장 전율이 일면서도 무언가 슬픈 순간이었는데 결국 전쟁이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얼마나 아이러니 한 순간입니까? 제가 인간인데 제가 이입해서 스토리를 경험해야 할 주인공은 나비 종족의 편에 서서 인간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정의가 나비 종족의 편에 있더라도 저는 이런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고 불편했습니다. 마치 미국인의 입장에서 '반딧불의 묘'를 본다면 이럴까, 일본인의 입장에서 '난징! 난징!'을 본다면 이럴까 하는 심정이 들더군요. 물론 플롯의 드라마는 완전 다르지만 그저 영화를 대입해서 경험할 때 피해자 가해자 경험의 구도를 비교해본다면 그렇다는 것이죠.

저도 약간 오버해서 생각한 것 같긴 하지만 만약 저보다 그런 관점을 더 몰입해서 경험한 분이라면, 불쾌하거나 우울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바타]에 나온 일반 인간들은 나비 종족과 비교해서 공감과 유대도 떨어지고 배은망덕하게 구는, '근본을 잊는 몰지각한 존재들'처럼 그려지니까요. 영화에 너무 몰입해서 영화 속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일반화시킨다면,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사실 그건 [아바타]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아무튼 제가 경험한 것은 그러한 구도에서 오는 '불편감'이었지요. 어떻게든 자살 충동,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을 공감해보고 싶긴 한데, 사실 저는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절경에 반해 현실을 떠나 판도라를 가고 싶다는 그러한 분들의 논리는 사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조차 되지 않습니다. 저는 2154년 기점으로 그려진 문명 기술에 도달하려면 언제가 되어야 할지, 솔직히 그런 문명을 빨리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뭐 우울할 정도까진 아니지만요. 

결론은 '도무지 왜 이 영화를 보고 우울해 하는지 모르겠다'겠네요.


이외에는 영화에 대한 몇 가지 감상입니다.

약간 색다른 아이디어라고 생각은 했는데, 영화 속 '아바타'가 [매트릭스]처럼 그저 가상 공간에 주어진 '온라인 상의 정보'가 아니라 영화 속에서는 나비 종족과의 유전자 결합으로 탄생한 실제 존재하는 생물학적 개체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접속을 하긴 하지만 현실의 누군가랑 한다, 다시말하면 [존 말코비치 되기]가 되겠네요.

전체적인 플롯은 [모노노케 히메]와 솔직히 흡사한 것 같더군요. 표절 공방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이 정도면 상당한 재창조라고 봅니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창의적이든지, 플롯이 얼마나 근사하든지 상관없이, 영화는 결국 어떤 상상력을 하나의 작품으로 얼마나 잘 구현해내는가가 결정하니까요.

제 입장에서 솔직히 [아바타]는 2010년, '궁극의 SF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판도라'의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거의 없되 영화 속에서 너무 리얼한 미래 문명을 그려놔서 왜 현실에서 그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냐!는 식의 불평이 생길만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주요 소재부터, 배경, 아이디어, 아이템, 더불어 이러한 것들을 표현해내는 구현능력까지. 정말로 어느 순간부터는 CG라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버립니다. 말 그대로 최첨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SF적인 상상력도 좀 더 발전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영화들이 SF 소설에서 이야기를 빌려서 상상력을 발휘해 왔는데, 지금은 영화들이 워낙 시각적으로 상상력을 잘 구현해주니까 SF 소설들도 상상도 못할 아이디어들을 좀 더 만들어 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썩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SF적인 상상력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더 좋아하실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Posted by feveriot

극장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니기에 다크나이트 이후 본 영화가 한 편도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더라구요. 

고만고만한 것들 중에서 뭘 볼까 고민하던 중에, 그나마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든 게 [미스 홍당무]였습니다. 사실 진즉 보고 싶었는데, 시기를 놓친 터라 아직 상영하나? 해서 찾아봤더니 다행히도 일부 극장에서 하더라구요. ([도쿄!]도 보고 싶었는데, 이건 보러 가기가 너무 귀찮아서 포기.)
무튼 그렇게 [미스 홍당무]를 보고 왔습니다.
보고도 리뷰 안하는 경우도 많지만, 제가 이야길 해보고 싶은 리뷰 관점은 두 가지 입니다. 


주인공인 양미숙의 심리 이해해보기, 

그리고 영화가 재미없다고 악평을 달고 다니는 이들 이해해보기.


재미없다고? <미쓰 홍당무>가 뭐 어때서?!


◇ 양미숙 이해1: 수치심

양미숙을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완전히 공감이 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배운게 배운거다 보니... 어떻게든 심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꽤 공감하는 부분이 '수치심'이고, 조금 공감 어려운 부분이 '애정망상'입니다.

양미숙은 '안면홍조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증후군은 현상을 모아놓은 것이니까, '안면홍조증'을 가진 사람도 있겠죠.
볼이 빨개지는 것은 자율신경의 활동이니 스스로는 어떻게 조정할 수 없는 기제일 겁니다.

처음엔 수치심이 느껴져서 볼이 빨개졌을테지만, 이후에는 볼이 빨개져서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는거죠. 자율신경은 말 그대로 자율이라 항상 생리적 원인에 따라 반응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남들이 날 이상하게 볼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볼이 붉어지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인지가 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자율 반응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도식', 즉 '틀'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울한 사람들이 꺼내놓는 인지 삼제(우울증 걸린 사람들이 꺼내놓는 대표적인 사고 패턴 3가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사고, 세상에 대한 부정적 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도 원인이기보다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 양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 사고일 뿐이지, 부정적 사고가 다시 부정적 사고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들이 낳는 부정적 사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과, 세상과, 미래에 대한 신념에 근거한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죠? 그렇지만 그러한 신념들은 사실 의식되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신념'은 거기에 분명하게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자각하기 어려운 것, 즉 '프레임' 입니다. 왜 자각이 어려울까요? 아마 자신이 가진 프레임을 파악하고 그것을 비교해가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없을 때는 그것은 당연히 합목적적이고 순기능을 합니다. 때문에 프레임이 잘 기능하는지를 비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죠. 그렇지만 서서히 변형이 이뤄지거나, 갑작스런 외상 경험으로 인해 큰 왜곡이 생길 수 있을테죠.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원래의 프레임으로 돌아가는 일은 상당히 어렵고, 그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생깁니다. 아무리 없애려고 애쓰고 노력해도 마음의 흉터는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한 결과가 우울증을 비롯한 여타의 '신경증'들로 나타날 수 있는거죠. 

여기에서 제가 비유하고 있는 '프레임'은 말만 다르지 인지행동치료(CBT)에서 말하는 핵심신념(core belief), 또는 도식(shcema)에 가깝습니다. 

(인지행동치료의 분파로써 도식치료라는 것이 있으며 거기서 사용되는 설명을 차용하되,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들기 위해서, '프레임'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관점'이나 '틀'이라고 생각하시면 사실 편할 것 같습니다.)

우울증의 예를 계속 이어보자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 '프레임'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아마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프레임은 시간과 환경, 타인같은 여러 자극들을 압도적 크기로 과장하고 자신의 능력을 크게 위축하도록 조정되었을 겁니다.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울증 환자들은 그것이 왜곡되었음을 절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압도감과 무력감은 진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거지요. 

프레임 이야기는 비유지만, 모두가 그 프레임에 원인이 있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환자들 스스로는 절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며,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그 프레임이 자신을 구성하고 있고, 상당부분 도움을 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왜곡된 프레임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율신경의 반응과 정서, 기분이라는 결과는 왜곡된 게 아니라 진짜입니다. 그것은 프레임이 정상적으로 작용할 때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정서적 각성은 신체적인 것이기에 왜곡이 낄 수가 없는 상당히 순진하고 진솔한 반응이라는 거죠. 

바깥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데,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볼에 빨개지는 것은 아마 가장 확인이 쉬운 정서적 각성 상태일 겁니다. 일반인도 볼에 빨개지고 달아오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죠. 일반인도 그것 자체를 컨트롤 하긴 어렵죠. 기제 자체는 정상인이라면 다 똑같은 거니까요. 

그렇다면 양미숙과 다른 사람이 다른 점은 뭘까요? 아마 양미숙이 '부끄러움'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겠죠.
볼이 빨개지는 것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때 일어나는 현상이죠. 

양미숙은 남들보다 볼이 잘 빨개지는 신체적 특성도 가지긴 했겠지만, 남들보다 특히 심한 것은 볼이 빨개지는 신체적 반응이기보단, 쉽게 발동되는 심리적 특성, 즉 수치심이었을 겁니다. 수치심을 자주 느끼고,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심각한 것'으로 자각하니까 계속 반복해서 각성이 일어나고 금새 볼이 빨개지게 되는 게 당연하겠죠. 

물론 그 둘은 따로 구별해서 말하긴 어렵죠. 따로 따로 오는게 아니라 동시에 벌어지니까요. 순서도 사실 어느게 먼저 인지 말하긴 어렵겠죠. 그 반응 자체는 거의 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양미숙의 그 심리적 특성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사실 그 부분은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해서 충분히 드러납니다. 양미숙의 배경, 양미숙이 가진 열등감, 양미숙이 원하는 소망, 양미숙이 느낀 서러움. 영화 속 양미숙의 행동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더라도, 양미숙이 느낀 열등감이나 서러움, 관객들도 대략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그게 안되는 분들있다구요? 기다려보세요. 잠깐 따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 양미숙 이해2: 애정망상 + 분열형 성격장애

공감 못할 양미숙의 심리. 분명 있습니다.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DSM-IV의 축1 진단을 따르자면 망상장애의 애정망상 진단을 내릴 수 있고 축2 진단을 내리자면 분열형 성격장애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다지 진지하게 판단한 건 아닙니다.) 

분열형 성격장애는 약간 남들과 다른, 특이한 사람들의 경우 어느 정도 해당될 가능성이 있는데요. 일단 양미숙이 기본적 삶(의식주)에서 남들과 아주 다른 삶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의심이 되구요. 특히 그녀가 타인과 관계하고 싶은 깊은 욕망에도 불구하고 관계기술의 결여와 공감의 결여로 인해 현실에서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신의 머릿 속으로 타인들의 표상을 끌어들여와서 논다는 점에서 분열형 성격장애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아멜리아의 주인공 '오드리 토투'가 나오는 <히 러브스 미>.
로맨틱 드라마로 착각하고 본다면 깜짝 놀랄 영화. 

애정망상은 편집망상, 과대망상, 피해망상, 신체망상 등과 함께 망상장애의 하나죠. 양미숙에게 망상장애를 내리자면 좀 심한 것 아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망상장애는 정신분열증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망상장애는 환각과 환청 등이 없고 다른 지적 기능과 인지 기능은 거의 정상에 속합니다. 때문에 일반인들과 다른 점은 대체로 단 하나, 망상적 사고를 근거없이 맹신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양미숙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그렇게 된 심리 이해하는게 어렵진 않습니다. 그리고 측은해 지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해프닝으로 치기엔 결과가 좀 심각했죠. (같은 소재의 다른 영화, <히 러브스 미>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야기 속 양미숙도 사실 상 스토킹을 한 거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특히 서선생의 관점에서) 정말 무서운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스토커의 죄는 너무 사랑한 것뿐 아니냐고 하지만 누가봐도 로맨티스트도 아니고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서선생에 대한 애정은 학생 때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고, 누군가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관계적 고립 상태에 있는 양미숙으로써는 자기 안에서 끝없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게 되는 데, 대체로 어린 아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게 됩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고 쉽게 오해하죠. 자기 감정을 타인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는 것, 양미숙이 가진 서선생에 관한 애정은 사실 자신의 감정을 타인의의 것인양 '투사'한 결과로써 나온 것입니다. 

특히 동기화된 것들에 대해서만 엄청나게 기억력이 좋아지는 전형적인 망상장애의 패턴을 보이고 있는데요. 그런 특성은 아마 수치심을 증폭시키는 데도 일조했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동기화시키는 것은 자신이 소망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피하고 싶거나 두려워하는 것도 포함되니까요. 아무튼 자기가 좋아하니까 모든 상황들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양미숙은 자기 상태를 알면서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남들에게 충고할 때는 참 충고 잘해줍니다. 그게 또 코미디죠. 근데 망상장애의 경우, 진짜 그럴 수 있을겁니다.

일단 이야기가 코미디였고 결과가 나름의 해피엔딩이라서 그렇지, 현실감을 좀 만 부여하자면 꽤 파국으로 치닫을 수도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냐마나는, <소림축구>의 씽씽이 결국에는 쓰레기주으면서 계속 살았거나, <E.T>가 51에리어에서 해부되었다거나,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약을 먹었다거나... 이런 생각을 해보는 저로써는 말이죠. 흠흠.

주성치는 항상 불쌍한/거만한 연기를 너무 잘하죠.
..아니, 거만한 건 그냥 원래 삶인가?;



◇ 재미없다는 이들 이해하기


일단 저는 아주 재밌게 보았습니다. 저렇게 생각할 것들을 많이 주는데 재미가 없을리 있나요? 아무튼 일단 무척 웃겼어요. 저는 희극지왕은 말그대로 주성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D
이야기 플롯을 보았을 때는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영화, '어바웃 어 보이'와 닮아 있지만, <미쓰 홍당무>는 '코미디' 장르임이 확실합니다. 
한국 코미디 중에서 '주성치 영화'에 비유할 수 있는 영화는 장진표 영화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장진 영화가 '선리기연', '식신'이나 '희극지왕'처럼 은근한 정서적 감동이 곁들어진 주성치 영화라면, '미스 홍당무'는 그리 거창한 담론을 담아내기 보다 캐릭터와 상황, 저질 개그를 이용해서 별 감동 없이 정신없이 웃겨만 대는 예전의 주성치 영화들과 닮았습니다. ('홍콩 레옹'같은) 약간 성인적 개그 요소가 있지만 그건 에피소드 하나에 불과하니까 섹스코미디냐 하면...흠, 그것도 아니란 말이죠.

그렇지만 아는 이들에게서 '재미없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최악이다' '영화도 아니다'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네이버나 다음 영화 평점을 살펴 보면 0점을 주는 이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불쾌한 기분을 느껴서 뛰쳐나왔단 이들도 많은 것 같은데, 제가 관람했던 극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보는 내내 웃음이 터져나왔구요. 중간에 나가거나 하는 사람도 없었구요. 

사실 저도 이 영화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 공감대를 좀 거스르는 부분이 꽤 많다고 봅니다. 그래도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0점을 찍어대는 그런 극단적이고 상식없는 심보는 꽤 거슬립니다. 관점이 다른 건 이해하지만 말이죠. 

아무튼 그렇게 어떻게든 그 심리를 이해해보려는 관점,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르네요.

한 가지는 앞서서 이야기를 했던, 양미숙이라는, 또는 그런 류의 인간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양미숙은 확연한 '신경증 환자'이기 때문에, 주로 비슷한 심리를 경험해보았거나,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신경증'영화에 공감이 안되는 사람은 비슷한 심리를 경험해 본 적이 없거나, 나와 다른 인간들의 삶을 타자의 관점으로 볼수 있는 능력이나 관심이 부족한 거죠. 그건 뭐 그들 탓을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공감 안되면 재미가 없는 거니까요. 

원래 좋아하는 것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싫어하는 것이 뚜렷한 이들은 많이 있죠. 특히 이런 류의 이야기에 관심없는 이들은 꽤 많이 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지구를 지켜라>를 보기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이유는 별 다름이 아닙니다. 어떤 영화가 재미 없는 이유, 그건 그 영화 속 인간들 이야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리 미움 받아도 정말 할말 없는 밉샹 진샹의 전형, 양미숙!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또 아닐 겁니다. 
다른 대안적인 설명은, 어떤 상황에서 이 영화를 보았냐는 겁니다. 저는 아주 편한 친구와 함께 대충 약속 잡고 만나서 신나게 떠들다가 시간 되서 영화보고 나왔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시간은 맘 편하게 즐기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영화 러닝 타임도 딱 적당했기에 지루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데이트를 하러 만난 남녀가 이 영화를 봤다면? 심지어 로맨스를 기대하고 갔다면??
사귀기 전이나 또는 막 사귀기 시작한 연애 초기의 남녀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영화를 본다면,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을까요? 대충 살짝 자극적이고 아주 감동적이되 즐거운 기분을 해치지 않는 영화여야 할 겁니다.

사실 저도 몰랐던 건데, 이 영화 무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요. 왠만한 여성의 노출이나 폭력적 장면, 욕설과 비속어에도 겨우 '고교생 관람가'라는 딱지 붙이는 세상아닌가요? 더구나 중학생이 주인공 중 한 명인 영화에서 '청소년 관람불가'라면, 뭔가 짐작을 해보아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젊은 남녀가 같이 보면 신경이 쓰일 만한 '대사'가 무척 많이 나왔죠. 저는 '라이타'의 러시아 뜻을 들으며 아주 크게 웃었지만, 제 웃음소리만 퍼지고 주변이 상당히 고요하거나 어색한 웃음만 들렸던 걸로 보아, 그 장면과 또 그것과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데이트 남녀들이 상당히 난감해 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들에겐 죄가 없는 것이, 이분들은 아마 이런 영화인 줄 절대 모르고 관람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보면서 웃기긴 했지만 솔직히 약간 놀랍기도 했거든요. 그제서야 '이거 성인용인가?' 하는 생각들고. 

아, 갑자기 생각난건데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영화의 주제를 찾는 강박관념 따위 버린 지 오래지만 주입식 고등학교 국어 교육의 편협함으로 인해, 이야기만 보면 피상적인 주제를 찾으려고 안달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참 많은 걸 보면, 이런 영화를 보면서 시간낭비했다고 느낄 수 밖에 없겠죠. 영화보면서 그런 거나 찾고 있는 사람 보면 저는 솔직히 안타깝습니다.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어바웃 어 보이'와 다를게 뭐 있겠냐마는.


◇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하지?

아마도 데이트 용으로 영화를 고르시는 분들은, 좀 더 숙고를 해서 영화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는 평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고, 어중간한 영화 역시 어중간한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한 영화의 평이 극단적으로 나뉘는 경우가 있는 데, 제가 볼 때 두 가지 경우라고 봅니다. 관객의 취향이 극단적으로 어긋나 있거나, 마케팅에 속아서 완전히 배반당하거나. 

원래 관객은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있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거죠. 그렇지만 누군가 사기를 쳐서, 제대로 알았다면 절대로 보지 않았을 영화를 보게 된다면, 억울함이 생기고 그 짜증과 분노를 어딘가에 토하려고 하는게 또 당연할 겁니다.

사실 <미스 홍당무>의 극단적 평가는 <디파티드>의 극단적 평가보다는 <미스트>의 극단적 평가에 가깝습니다. <디파티드>는 리메이크 영화인 동시에 아카데이 수상작이었던 탓에 대다수의 기대를 모으는 영화였으나, 원작을 경험한 관객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인 경우가 되버린 것이죠. (물론 저는 둘다  재밌었지만, 우열을 가린다면 디파티드쪽을 택하겠죠. 그건 제 취향일 뿐이구요.) 그에 비해 <미스트>는 사실 별로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었고, 이런 영화는 대개 처음부터 호불호가 분명히 갈려서, 어지간하면 안 봅니다. 볼 사람만 보고 아닌 사람은 보지 않을 영화지만, 한국의 전형적인 '왜곡/뻥튀기' 마케팅 수법을 써버린 탓에 흥행은 의외로 성공했지만 관객 평가는 엉망이 되버렸습니다. 

<미쓰 홍당무>가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성인용이다보니 일단 관객이 적었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중딩들이 공감하고, 즐길만한 개그가 많았다고 보는데 말이죠.) 정말 재밌는 영화였기에 흥행이든 평가든 어느 한 쪽은 나름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미스트>에서도 그랬지만, 요즘의 영화마케팅 회사들은 믿을 게 못되니까, 영화를 선택하시는 분들이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까지 이야길 하냐면, 솔직히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제가 정말 재밌어 하고 좋아하는 영화에 대놓고 누군가 '최악'이라고 하면 짜증도 나고,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한심해 보이거든요. '별로 재미없었다.' '나에게 맞지 않았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또는 '나는 이러이러한 점이 너무 싫고, 너무 불쾌했기 때문에 최악이었다'라고 한다면 아 그런가 보다하고 이해라도 하겠죠.

그렇지만! 무턱대고 최악이라고 하면 그건 상식 없는 걸로 밖에 안 보이고!! 
결국 그럼 자기 얼굴에 침뱉는 걸로 생각될 뿐이고!!! 나는 답답하고!! 으악!


◇ 아무튼 추천작!

저 개인적인 올해의 한국영화를 뽑는다면, 많이 보진 않았기는 해도 단연코 <미쓰 홍당무> 뽑겠습니다.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빗나가지 않고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재밌게 유지시켰던 점, 무엇보다 밉샹 진샹의 믹스 자체인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를 잘 묘사해내면서도 사랑스럽게 만들어버린 공효진의 열연, 불쑥 등장하는 친숙한 얼굴이름들에 더해서 웃긴 엔딩까지. 
아주 전형적인 '재밌는 영화'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공효진씨! 앞으로 완전 좋아할 것 같아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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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

21세기에 인류를 멸망시킬 지 모르는 가장 강력한 질병 중의 하나가 무언지 아세요?

예상하셨겠지만 바로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대부분의 자살 사고 원인이 되며, 타살이나 문제 행동에도 관련되고, 스트레스, 신체적 질병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입니다. 이건 겁줄려고 만들어낸 '도시괴담'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연구들이 축적되고 검증되며 밝혀진 '사실'입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전파하는 그 파괴력에 비하면 오히려 경각심이 낮은 경향이 있죠.[각주:1]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우울증'은 사실 공식적인 진단명으로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진단범주가 체계화되고, 증상의 다른 양상에 따라 상세하게 분화되면서 ‘기분장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름의 진단 범주가 나타났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주요우울장애’, ‘기분부전장애’, ‘양극성 장애’ 그리고 ‘우울성 성격장애’입니다. (물론 세세하게 보면 더 많습니다.) 








대표적인 우울성 
성격 어린이, 

이카리 신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우울증은 이것들을 통틀어서 말하는 우울'증후군'을 의미하기도 하고, 가장 심한 주요우울장애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실질 가까이에 있고 해당되기 쉽지만, 동시에 스스로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바로 '우울성 성격장애'와 '기분부전장애'입니다. 때문에 이 두 가지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볼까합니다. 스스로가 우울하다고 느껴지시는 분이든 아닌 분이든 너무 부담갖지 마시고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우울성 성격장애의 기원


우울성 성격장애(depressive personality disorder, 이하 DPD)는 다양한 상황 하에서 시작되는 우울한 인지와 행동패턴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이 핵심특성인 정신장애입니다.


우울성 성격장애의 역사는 20세기 초의 유명한 질병분류학자 Kraepelin에게서 기인합니다. 그는 사실상 거의 최초의 본격적인 임상심리학자로,Kraepelin은 조발성 치매, 조울증 등의 현대적 진단 범주(요즘말로 바꾸면 각각 정신분열증, 양극성 장애의 시초가 됩니다.)를 고안한 사람입니다. Kraepelin은 '우울증'과 구별되는 ‘우울한 기질(depressive temperament)’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일생 동안 지속적인 우울, 슬픔, 무기력, 절망, 낙담으로 인한 정서적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죄책감과 자기 비난을 쉽게 사용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기술하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인생에서 생기가 부족하고 쉽게 피로하며 매사에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다고 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울한 기질’은 유전적이며 잘 변화하지 않는 특성이었죠. 

Kretschmer라는 학자 역시 ‘우울한 기질’에 대한 Kraepelin의 견해와 대체로 동일한 관찰을 보고하였으나, 주요 기분에 대해서는 ‘만성적인 슬픔’으로 해석하기보다 단지 남들보다 덜 생기 있고 덜 즐거워하는 경향을 보일 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Kraepelin과 Kretschmer 두 학자 모두 이러한 성격을 ‘기질’, 즉 유전적 원인과 천성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기질이 우울증을 발달시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후 정신병질자(psychopathy) 및 여러 성격장애 진단을 최초로 제안한 Schneider라는 학자는 ‘우울성 정신병질자(depressive psychopathy)'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들이 침울하고, 회의적이며, 자신을 내세우길 꺼려하며, 매사에 걱정스럽고,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마치 제 이야기 같습니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특히 그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남들이 느끼는 행복이나 기쁨을 오히려 피상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신 Schneider는 그것의 원인을 ’기질‘로써 설명하려 하지는 않았으며,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후 DPD는 몇몇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DSM-III와 DSM-III-R에서 우울증과 구별되는 기분부전장애(dysthymic disorder) 범주에 포함되었고, DSM-IV에서는 기분부전장애와도 구별된다는 증거로 인해 정식진단 범주에서는 제외되고 DSM-IV 부록에 포함되었습니다. (부록은 대체로 진단용이기보다는 연구용으로 사용되는 진단기준입니다. 현재 연구 중이라는 이야기죠.)


DPD는 주로 성인초기에 나타난다고 하며, 광범위한 우울성 사고와 행동 양상을 보이게 되며 주로 다음 형태로 나타납니다.


1) 특별한 일이 없어도 대체로 낙담, 침울, 불행하며, 행복감과 기쁨의 부재,
2) 무가치감, 낮은 자존심, 극도로 낮은 자기평가,

3) 빈번한 반추적 사고[각주:2] 경향,

4) 타인과 미래에 대한 전반적이고 만성화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믿음,

5) 매사에 흔하게 드러나는 죄책감과 후회.

  

주요우울장애나 양극성 장애, 기분부전장애에는 해당이 되지 않으나, 위 특징이 드러난다면 DPD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때요? 이러한 경우에 해당되는 분들 주변에 꽤 있는 것 같지 않으신지요? 


◆ 우울성 성격장애와 주요우울장애/기분부전장애 차이

 

사실 DPD와 변별해 내기 어려운 것은 우울증, 즉 ‘주요우울장애’ 보다는 오히려 ‘기분부전장애’ 쪽입니다. ‘단일 우울’ 기분장애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주요우울장애이고 좀 덜 심각한 것이 기분부전장애인데요. 주변에서 흔히 우울하다, 우울증 걸렸다고 이야기 하는 경우는 사실 증상의 다양성이나 심각도 면에서 주요우울장애에 해당되기 보다는 그보다 좀 더 낮은 단계인 기분부전장애나 DPD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향후 악화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DPD는 만성적인 성격적인 특징이다 보니 대체로 자신의 상태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성격적 특성을 스스로 바꾸려 하는 노력이 적습니다.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더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죠. 그 점이 기분부전장애와 구별되는 점입니다. 기분부전장애는 좀 더 ‘일시적인 질환‘으로 꼭 성인 초기에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더 심각한 주요우울장애는 눈에 띌 정도로 심각한 장애이며, 인지장해와 최종적으로 자살 시도 및 자살 실현까지 나타나는 경우죠. 대부분의 자살 시도는 주요우울장애 수준에 이르러서 드러납니다.

 

또한 주요우울장애나 기분부전장애는 신경학적 문제가 있는 경우가 흔하며 그로 인해 자신이 불편감을 느끼는 게 흔한데 비해, DPD는 신경학적 문제나 불편감이 없거나 혹시나 있더라도 자신에겐 익숙한 것이기에 만성화 되어 있고 대단하게 생각하질 않기 때문에 자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신경학적 문제라는 것은 뇌 신경전달물질 상의 이상을 이야기합니다. 심각한 우울증의 경우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약을 투여하게 되는 거죠.)

 

◆ 마치며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물론 실제 진단 시에는 더 복잡하며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합니다. 말은 쉽지만 사실 만성적인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를 알아내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울은 즐거움, 기쁨, 슬픔, 분노처럼 기본적으로는 정상적인 정서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단순히 우울함을 느낀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준이나 정도를 초과했을 때 문제라고 보는 것이구요. (상담을 할 때 기분점수란 것을 흔히 이용합니다. 인터넷에도 우울증 테스트같은 게 있으니 자신의 기분 상태를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행여나 자신의 상태가 많이 거론된 것 같아 ^^;; 걱정이 되시는 분들은 반드시 진료기관을 찾아가 검사 및 상담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지역에 정신보건센터가 있으니 거리감이 느껴지는 병원보단 그쪽으로 문의하시는게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음이 관계된 질병은 말 그대로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일입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명을 알아야하는 것처럼, 모든 문제의 치료와 극복의 시작점에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덧붙여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패배적 성격장애에 대해 알고싶으면!
[psychology : taste/pathologic : clinical] - 자기패배적 성격장애: 우울성 성격장애와의 차이

  1. 연이은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으로 우울증의 위험성이 부각되기 전에 작성되었던 글입니다. [본문으로]
  2. repetitive thought. 반복적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집착적 사고를 지칭합니다. 긍정적 영향도 있지만 대체로 부정적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feveriot


◆ 마조히즘 성격?


피학적 성격장애(masochistic PD)라고도 불리는 자기-패배적 성격장애(self-defeating PD)는 DPD와 매우 유사한 장애입니다. 피학증(masochism)은 가학증의 상대적 개념으로 요즘 들어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말입니다. 가학증과 반대로 성적 쾌락을 위해 자신을 괴롭히는 기괴한 행동을 이야기하죠.

그러한 양상이 일반적인 관계에서 나타날 때 피학적 성격장애, 또는 자기-패배적 성격장애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적 가학증처럼 성적 피학증은 DSM-IV에 성도착증 범주에 여전히 존재하지만, 자기-패배적 성격장애는 연구가 아직 부족한 실정으로 정식 진단에선 누락되었습니다.


간략히 개괄하자면 1) 불필요한 상황에서의 과도한 자기-희생, 2) 타인의 호의와 친절에 대한 무시와 거절, 3) 달성될 수 있는 기회와 목표에 대한 지연과 포기, 4) 타인으로부터 무시, 거절, 분노를 유발하는 행동양식, 5) 즐거움과 기쁨에 대한 무의식적 회피 및 상처받음과 패배에 대한 무의식적 반김 등입니다.

분명히 진단 기준은 다르지만 당사자가 경험하는 정서적인 양상은 자기-패배적 성격장애와 DPD의 특징이 대체로 비슷합니다.

 

누가 생각나시나요?
저는 조제가 생각납니다. 
자세한 건 다르지만요.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낙담, 무기력, 비관주의, 즐거움의 상실 등을 자초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DPD들은 오히려 직업적으로는 성공적인 이들이 꽤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우울하다고 하잖아요? 또 그들은 공유되기 어려울지는 몰라도 자신만의 즐거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몰두하다보면 성취가 나타나기도 하는거죠.

 

그렇지만 자기-패배적 성격장애는 대체로 다양한 영역에서 실패의 패턴을 보입니다. 그 사람이 가진 실제 능력과 무관하게 주로 자신들이 그런 상황을 자초해버리지요.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남들로하여금, 또는 상황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도록 주문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DPD는 타인에 의한 처벌에는 저항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인, 즉 다시 말해 '자기-고문적' 성격인 거죠.

 

상담을 통해 자기 안의 패배적 성격을 극복하고 세상을 향해 뛰쳐 나가는 이야기,
굿 윌 헌팅.
우울성 성격장애와 주요우울장애의 차이를 알고 싶으면!
[psychology : taste/pathologic : clinical] - 우울성 성격장애: 주요우울장애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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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게 우울증 탓인가?


탤런트 최진실 씨의 안타까운 죽음과 함께, 세상이 다시금 우울증[각주:1]의 위험성에 관심 갖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임상심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우울증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경각심을 일깨우는 순간이 항상 늦습니다. 또한 언젠가부터 매해 반복되어 온 일련의 연예인 자살 사건이 항상 '우울증'이란 쉬운 원인을 핑계로 구체적인 원인과 대응책을 덮은 채로 슬쩍 넘어가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우울증'이 원인이 되면, 그건 그 개인이 스트레스에 취약했던 것뿐이고 그 개인의 잘못으로 전가해버릴 수 있으므로 주변인들의 죄책감이 줄어들고 다른 요인들의 책임감도 적어지죠. 정말 편한 설명입니다. '우울증'이라는 딱지 뒤에 숨어있는 인과적 요인들이 다 무색해지네요. [각주:2]

 

그래서 이제부터 그걸 좀 걸고 넘어지려고 합니다. 진짜 원인, 주변의 책임들이요.[각주:3]

 

'우울증'은 바이러스나 세균, 기형 유전자 등으로 유발되는 생물학적 질병이 아닙니다. 물론 유전적, 신경학적 기전은 있습니다. 있을지언정 환경과의 상호작용과 인과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이지, 어떠한 특정한 인자가 머리 속에 제멋대로 들어와서 숨겨져 있다가 이유없이 터지는 게 아니란 것입니다.

 

좀 더 명확히 말해서 '주요우울장애'로 진단되는 우울증은 어떤 현상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어떤 현상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걸리면 자살하고 싶어진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신병리학과 질병분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자살하고 싶어지는 강한 충동을 느끼는 경우를 우울증으로 진단한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4]

 

다시 말해 '자살'이라는 결과로써 보았을 때, 그 사건의 원인을 우울증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쉬우며,  누군가가 죽은 이유를 '우울증'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이후에 또 다른 어떤 이의 '자살'을 예방하는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노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책임감 없이 공허하게 울리는 메아리'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대체 몇 명의 연예인, 아니 '현실에 좌절한 인간들'이 얼마나 더 죽어나가야 그들에 대한 예방책이 생기고 현실이 개선될 수 있을까요?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고 애도하고, 슬퍼하고, 아쉬워하면서 어째서 그런 일이 또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어째서 예방책을 마련할 생각도 하지 않는 걸까요? 왜 항상 신문과 뉴스에서 잠깐 다루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말아버릴까요?

  

<결국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점점 잊혀지고 있네요.>



◆ 무엇이 문제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저 개인적인 해답은 결국 '관심'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1)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지 않는 삶, 2)  대중적 인기와 함께 일희일비하는 불안정한 직업 생활, 3) 미디어들로부터 쏟아지는 악성 루머들, 4) 장난삼아 연예인을 괴롭히는 인터넷 악플러들, 5) 그외 개인적 인간 관계로 인한 어려움들.

 

스타들이 가진 이러한 고충에 관해서 많은 이들은 관심 가지지 않습니다. 언론과 TV는 항상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즉시만 관심 갖습니다. '비극'과 '죽음'조차 대중문화에 있어서의 본질은 가쉽이라는,  변하지 않는 슬픈 현실이 참담하게 반복됩니다. 거기에 휩쓸려가는 독자와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너무할 정도로 그들에 대해 한 인간으로써 관심 갖지 않습니다.

 

왜 관심 갖지 않을까요? TV 속 연예인과 스타들이 자신과 같은 걸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처럼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의 심볼이고, 하나의 캐릭터고, 하나의 상품이죠. 그렇지만 그건 TV 속 연예인들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손에 꼽는 주변인 일부를 제외하면, 친구, 스승, 제자, 선후배, 동료, 애인, 심지어 부부자녀 끼리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그건 대상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시작됩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공감을 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결국 제대로된 관심을 가져보지 못했기 떄문입니다.

 


◆ 우울증 걸린 이들의 관점 알기


자, 이제부터 약간의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Q: 만약 아는 사람이 우울하다고, 죽고 싶다, 죽을 것 같다고 심각하게 고민을 토로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대체 뭐가 힘들어?    2) 나도 힘들어.   3) 힘내, 잘 될거야.   4) 네 가족을 생각해.

 

넷 중에 어느 게 더 나은 대답일까요?


 

 

결론부터 말해서 어느 답이든 그리 좋은 답은 아닙니다.

 

1) 그게 뭐가 힘드냐는 건 누가 봐도 극심한 몰이해의 전형이죠. 

2) 힘들다고 하는 사람에게 자기도 힘들다는 식의 대꾸 역시 몰이해의 하나입니다.

3)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역시 좋은 대답은 아닙니다. 

4) 좀 더 책임감을 가지라는 의도였을 겁니다. 역시 나쁜 대답 중의 하나입니다.

 

앞선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답을 길게 설명 하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예를 들어 이야기 하겠습니다.

 

주요우울장애에 걸린 사람들이 빠져있는 정신적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자면, 어둠 속에서 까마득히 높은 절벽에 가까스로 손가락 몇 개를 걸친 채로 매달려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 딱 5초 동안,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세요.

 

자, 이제 무얼 하실 건가요? 

당연하게 어떻게든 소리를 지르고 사람을 찾아 도움 요청을 하시겠죠?  

겨우 한 사람이 도우러 왔습니다. 당장 도와줄 거라 기대했던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대체 뭐가 힘들어?"[각주:5]

"나도 힘들어."[각주:6]

"힘내, 잘 될거야."[각주:7] 

"네 가족을 생각해."[각주:8]

 

...자, 이제 좀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의 그 기분이 좀 공감되시나요? 이젠 제가 왜 몰이해라고 했는지 아시겠죠? 

 


◆ 우물에 빠진 이들을 건져올리기


실제 상황이 절벽에 매달린 것은 아니니,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현실의 더 다양한 맥락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도움의 시작은, 그 상황을 이해하는 것부터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위의 대답들은 그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몰이해적 반응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위기에 빠졌음을 파악조차 못하는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자신의 상황처럼 느끼고, 진심으로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기원하고 도와주려하는 마음이 있음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대체로 그들은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그들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믿죠. 그러나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것은 마지막 구원요청입니다. 눈으로 자신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없으니,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말로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주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구원요청의 희망은 사라지게 되며 무망감[각주:9]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이후 자신의 상황을 회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어 현실에 절망하고 스스로 절벽을 쥐고 있던 손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주변인의 잘못 역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합니다만, 저는 그 말도 반대합니다. 그건 심각한 우울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우울 기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울한 기분 한 번도 경험 안해본 사람은 없죠. 그건 누구나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임상적 수준의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일단 일반인들도 대체로 경험하는 생활 상의 우울한 기분은 기분점수가 평상시보다 -10점 정도 된 상태에 불과하지만, '병적인 우울증'에 걸려본 사람은 -100점, -200점의 기분이 있다는 걸 압니다. 때문에 정말 심각한 상태인 사람들이 우울하다고 해도(-100점), 듣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 판단하여 이야길 합니다(-10점). 서로 완전히 '다른 우울상태'을 가지고 이야길 하게 되므로 한 쪽은 심각한데 한 쪽은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행여나 타인의 기분 상태를 짐작하더라도 그것은 분명히 '어두워보이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 어려워 합니다. 재밌고 즐거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즐거워지는 것 처럼, 우울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답답하고 불쾌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바이러스'는  아닙니다만, 기분 장애 환자를 도우려고 하다보면 실제로 '전염'되는 경향이 있으며, 돕는 사람도 그 어둠 속에 빠질 위험을 경계합니다.



◆ 언제까지 책임을 '우울증'에게만 전가할 것인가?


이처럼 주요우울장애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노력은, 깊고 어두컴컴한 우물 속을 내려가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상당한 정서적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테고, 도우려는 사람도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질 지도 모릅니다. 절벽에 매달린 사람을 구하는 일보다는 안전하겠지만, 마냥 쉬운 일은 또 아니란 것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아무리 가까운 가족과 친척, 친구라도 심각한 상태의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전문적인 노력은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 단계에서 우울증에 빠진 이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1.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을 발견하기

2. 일상에서 지지하고, 위험 상황에서 지켜주기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증인지 모릅니다. 흔히 우울하다 생각하고 우울하다 말하지만, 우울 장애란 것은 갑작스럽게 기분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각주:10] 조금씩 조금씩 기준점을 낮게끔 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위험한 상태'라는 자각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저 약간 어두운 우물에 빠졌다고 생각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 시점에서야 우물 밑바닥에 왔음을 깨닫게 되고, 그 시점이 사실상 절망적 상태이기 때문에 이미 늦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주변에서 기미가 보인다면, 심각하게 고려를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울증의 과대평가로 인한 손해는 아주 약간의 시간낭비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우울증의 과소평가로 인한 손해는 또 다른 절망과 큰 슬픔이 될 지 모릅니다.

 

또한 언제든지 뒤에 지지하고 격려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 먹고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면서라도 자꾸 자꾸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살 위험이 분명하게 파악되었다면 모든 노력을 다해서 자살을 방지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살 시도 후에 죽음을 피했다면, 원망을 하기보다는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걱정한다는 것을 일관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물론 전문가에게 연결을 할 시간이 있다면, 무엇보다 전문가나 전문 시설(병원, 상담소, 정신보건센터)에 의뢰를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은 일반인이 전문가를 따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도 가까운 사람들보다 때로 도움이 덜 될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은 약물을 먹으면 나을 수 있고, 잘못된 인지를 수정하는 지지적인 치료를 통해 나아질 수 있지만, 주변인과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그 사람을 돕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금 우울증에 빠지거나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우울증이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임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기본적인 관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악순환을 끊는 가장 큰 역할,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어야 겠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주인공을 돕는 조연이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 배역은 가족과 동료들이 맡게 되겠지만,

연예인들에게는 시청자와 팬, 네티즌들이 그 역할을 대신 맡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명분으로 '사회적'이고 '환경적' 요인이 섞인 복합적 문제를 한 개인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로만 단순화 시켜 몰아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졌으면 합니다.

  1. 이 글에서 우울증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기분부전장애나 우울성 성격이 아닌, 가장 심각한 상태인 주요우울장애Major Depresion Disorder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미리 밝히자면, '우울증은 중요하지 않다'나 '우울증보다 다른 중요한 게 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울증의 진짜 원인과 우울증에 걸린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들을 좀 더 공감하고 도움 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본문으로]
  3. 여기서 말하는 주변의 책임이란, 특정인을 중심으로 가족 및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며, 막연하게 '네티즌'의 책임을 묻는게 아닙니다. 약간은 추상적 맥락에서 개인을 둘러싼 '환경'을 지칭하는 것이니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본문으로]
  4. [본문으로]
  5. 상황을 이해할 생각이 없다는 극심한 몰이해적 답변입니다. [본문으로]
  6. 자기 일에 바빠서 상대를 챙길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었을 수록 우울증에 빠진 당사자는 이런 이야길 들었을 때 무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으로]
  7. 상황을 좋게 볼만한 여유가 전혀 없는 당사자로써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위로로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으로]
  8.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충분히 여러가지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가족문제도 포함되어 있구요. 하지만 점점 스트레스에 압도당하게 되므로, 이런 말은 그들에게 결코 긍정적으로 해석되는 말이 아닙니다. [본문으로]
  9. hopeless, 즉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절망despair이 희망의 끈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임에 비해, 무망은 희망의 지푸라기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본문으로]
  10. 갑작스럽게 기분이 변하는 기분장애를 양극성 장애, 흔히 칭하는 말로 조울증이라고 합니다. 극심하게 좋은 기간이 있다가 극심하게 떨어지는 기간이 반복되는 양상을 나타냅니다. 양극성 장애와 우울증은 구별되는 장애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feve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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