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리학에서 점술, 사주를 공부한다?

아주 오래된 이야긴데, 제가 심리학과에 처음 진학한다고 했을 때 친척들한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럼 앞으로 점쟁이 되는 거냐?" "심리학? 관상보고 사주보는 거 아니냐?" 뭐 그외에도 만나본 좀 나이드신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더라구요.  

점술, 사주, 관상, 손금, 별자리, 타로카드 등등. 여기에 전부 넣겠습니다. 아마 이 중에 몇 가지 흥미삼아 정도는 해본 분들 많을 겁니다. 이것들은 대표적인 '유사상담'의 사례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주나 관상, 점술은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 하는 반면, 타로카드는 젊은 층에서 인기가 많죠. 심지어 심리학과 학생들도 좋아라 합니다.

저것들을 폄하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일단 심리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이야길 해야겠네요. 일단
 교과내용에서 저런 걸 배우는 일은 없구요, 학문적으로 저 종류들에 특히 거리를 둡니다. 기본적인 심리학의 연구적 방법적 접근에 맞지 않거든요. 물론 개인적 취향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죠.

저것들에 텔레파시, 예지력, 투사력, 전생체험, 심령술, 최면, 혈액형 성격 등을 더해서 함께 묶으면 '유사심리학'이 됩니다. (귀신, UFO 등이 포함되면 '유사과학'이 되죠.) 최면은 다른 것과 달리 허황된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여전히 연구가 부족하고 미스테리한 측면과 오해도 많은 탓에 함께 분류되는 것 같습니다.  

왜 유사'심리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정신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 아닐까 싶네요. 심리학의 역사 초기에는 실제로 저들과 심리학이 잘 구분되어 있지 않았었죠. 정신분석의 역사 초기에 최면술이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 초기 정신분석의 거두 프로이트나 융은 '초심리학'을 주창하기도 했고, 많은 문헌에서 심령술에 심취해 있었다는 이야기가 발견됩니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는데, 서구나 국내 의학계 모두가 정신의학과 심리학쪽을 좀 폄하해서 본다고도 하고요. (연구방법과 연구대상 및 치료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면이 많긴 많죠.)

이런 과거 때문인지 몰라도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현대의 연구자들 중 오히려 '가장 회의적인의식 구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미국에서 초능력이나 한의학처럼 여태까지 기존 과학으로부터 유사과학 취급을 받던 대상들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식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는데요, 물리학자, 생화학자 같은 기초과학자들은 대상에 따라 개방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고 의견이 대체로 분분했는데, 심리학자들은 거의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평균 점수가 가장 낮은 집단 역시 심리학자들이었다고 하네요.

물론 이건 미국이야기고 한국은 조금 다르겠죠. 한국에서는 여전히 심리학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약간은 과거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라고 해서 딱히 더 유사과학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구요. 솔직히 저도 학창시절 호기심이 많아 유사과학들에 관심 갖다가 심리학으로 왔으니까요 ^^;;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 느끼지만 지금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사회 곳곳에 많이 퍼져서 심리학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키기 전까지는 이런 오해는 여전히 남아있을 듯 하네요. 앞서서 심리학이 발전했던 나라들 역시 그런 오해 또한 하나씩 해소해 나가면서 발전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심리학자들 모두 노력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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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 (Psycho, 1960)

현대적 서스펜스의 거장이자 스릴러라는 장르를 창조한 것으로 불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 [사이코]가 '사이코 스릴러‘의 고전명작이라는 것에 전 세계 영화 팬 누구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여주인공인 자넷 리가 욕실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자, 고어가 나오지 않는 가장 끔찍한 장면으로 기억되며, 이후에도 수많은 오마쥬를 통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히치콕 감독은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에 매료되어 있었다는데요. [사이코]를 보면, 프로이트의 이론 없이 히치콕 감독이 과연 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정신분석적인 내용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 중에서도 프로이트가 아들러와 융 등의 비판에도 절대로 포기 못했던,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성적 성격 발달 이론'은 [사이코]를 통해서 전형적으로 드러납니다. 그 증거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입니다.


 ◇ 오이디푸스 신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신탁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아들을 낳아서 아폴론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신탁을 받은 결과 아이가 장차 커서 자신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이야길 들은 아버지 라이오스는, 목동을 불러서 이 아이를 산에 데려가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불쌍하게 여긴 목동은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아이를 건네주고, 또 이 목동은 아이를 왕실로 보내게 되어 그곳에서 오이디푸스[각주:1]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지내게 됩니다.
  성장한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받아보니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아, 예언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의 왕실을 나오게 됩니다. 그러던 중 노상에서 어느 무리와 시비가 붙어서 싸움을 하게 되는데 한 노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게 됩니다. 그 후 테베 앞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길을 가로막고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지고 있다는 이야길 듣고, 오이디푸스는 그 수수께끼를 풀어서 스핑크스가 분개하여 자살하게 함으로써 고통 받고 있던 테베를 구출하게 됩니다. 마침 전왕이 신탁을 받으러 갔다가 의문사를 당해서 왕이 없던 테베의 신하들은 새로운 구세주 오이디푸스를 새 국왕으로 추대하게 되고, 오이디푸스는 관례대로 전왕의 부인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며 살게 됩니다.  
베를 잘 통치하였음에도 온갖 재앙이 끊이지 않자, 오이디푸스는 아폴론의 신탁을 듣는데,  전왕을 죽인 자 때문이라는 이야길 듣고 백성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사건을 추적한 결과 자신이 죽인 노인이 전왕이자 자신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라는 것과 왕비인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칼로 찔러 실명시키고 왕위에서 불러나 딸과 방랑을 하다가 세상을 뜹니다.
   


◇ 프로이트와 '성적 발달 단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란, 앞서 말했듯이 정신분석에서 보는 성격 발달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적 성격발달'이라는 이론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프로이트 이론의 바탕은 인간이 '리비도'라는 성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렇게 리비도가 부착[각주:2]되는 신체 부위에 따라 인간 성격이 발달되는 단계를 5단계로 구분했습니다. 프로이트가 어떻게 설명했는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중심으로 살피겠습니다. 

구강기와 항문기를 거쳐서 3단계인 성기기에 이르면 리비도 에너지는 아동의 성기에 이르게 되는데, 이 시기에 아동은 일종의 자위행위와 같은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성기에 관한 강한 호기심과 집착을 보입니다. 이러한 과정과 함께 아이는 이성 부모(남자애는 어머니)에게 강한 애착을 가지면서 이성 부모의 애정을 이등분하는 동성의 부모(남자애는 아버지)를 라이벌로 간주하고 강한 질투심과 경쟁의식을 보이게 되죠.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오이디푸스 삼각관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자애(하단)와 여자애(상단)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대칭적으로 보여준 그림입니다.
이 그림만으로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구조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http://courses.washington.edu/freudlit/oedipus_complex.jpg 가 원 출처입니다.


남자애의 경우, 처음에는 어머니에 대한 강한 애정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강한 경쟁의식을 불태우지만, 이후 아버지의 힘으로 인해 거세불안을 경험하고 어머니의 1차 애정대상이 아버지임을 확인하고 굴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과연 아버지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며,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아버지를 관찰하고 동일시하기 시작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해결해나간다는 설명입니다.


프로이트가 오디이푸스 설명 대부분을 할애한 것은 남자애입니다. 여자애도 비슷한 내용을 적용하여 설명하였지만 여성에게 '남근'이 없다는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리뭉실하게 설명하고 넘어갑니다. 후에 카를 융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여자아이 관점에 대해서 따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만큼 극적인 의미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영화 스토리는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영화 정보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참고하세요.

DAUM 영화 '싸이코' 정보보기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1899

지금부터 전개되는 설명을 잘 이해하기 위한 전제는, 1)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상태에서, 2) 영화 '싸이코'를 관람하고, 3) 마지막으로 저의 글을 읽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 '노먼 베이츠'의 정신분석이므로 최소한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것이 필수전제조건입니다. 
제가 정신분석 전문가가 아니고 기본적인 이론을 단순하게 적용한 수준이기 때문에, 기초적 내용만 이해하셨다면, 설명 자체는 어렵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겁먹지 마시길 ^^;;


노먼 베이츠의 정신분석



 명탐정 프로이트의 데뷔작, 살인의 해석


<사이코>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머리를 쓸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살인의 해석 The Interpretation of Murder>라는 소설은 프로이트와 융을 등장시킨 것으로 꽤 유명한 소설입니다. 정신분석 이론을 몰라도 이야기의 재미는 유지되만, 사건의 실마리를 얻기위해서는 프로이트의 고전적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을 알아두는 것이 편합니다.

<살인의 해석>과 <사이코>의 결정적 차이는 프로이트와 융이 나오느냐 안나오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속 살인 사건의 핵심을 이루는 인간 동기와 그 심리에는 정신분석학이 있습니다. 사실 <살인의 해석>은 제가 보기에 이론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그려낸 것 같아서 그렇게 신기하지도 않고 그다지 재밌지도 않았습니다. ^^; (프로이트도 실상 거의 나오지도 않죠.)

정신분석학 이론의 과학적 근거는 사실 입증하는 노력을 포기했다고 봐야하지요. 또한 치료적 적용 범위에 관해서도 사실 말이 많습니다만, 이미 프로이트와 융의 사상은 철학적인 부분으로 넘어가서 이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나 영화는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관점에서는 정신분석의 이해도 필요한 것으로 봅니다.


 개인적 잡담

정신분석은 사실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론을 피상적으로 다루면 그냥 프로이트 철학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무턱대고 없이 이론을 적용해버리면 망상계 상상계 공상소설을 쓰는게 됩니다.

사실 영화 줄거리나 인물들에 대해서도 마구잡이로 적용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히치콕 감독은 분명하게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분석 이론을 적용해서 인물을 창조해내고 정신분석적 관점의 신경증 이야기를 영화 소재로 즐겨 다루었다고 하기에 한 번 목적과 의도성을 가지고 적용해본 것입니다. 사실 제가 적은 내용은 현실에서는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 나름대로는 노력해서 쓰긴 했지만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기에 이런 해석도 있다고 참고만 해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D

  1. '부풀어 오른 발'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버리러 갈 때 발목을 못으로 박아서 잡고 갔기 때문에 오이디푸스의 발목이 부풀어 있었다고 하죠. [본문으로]
  2. cathexis. 성적 에너지가 특정 대상에 집중하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보통 특정 인물이나 신체 부위에 부착된다고 보았으며 그 변화 과정이 성적 발달단계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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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문쿨루스?

Homunculus: 호문쿨루스.  

'작은 사람', 즉 중세에 요정을 부르는 말이었던 이 라틴어는 심리학에서도 나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내용으로, 심리학 개론에도 나오죠.

심리학 개론을 공부하신 분은 'Homunculus'라는 말보다는 '신체운동뇌도' '신체감각뇌도'라는 말이 더 익숙하실 겁니다. (아마 시험 공부하느라 열심히 외우셨을거에요 ^^)

대뇌 피질 전두엽과 두정엽 각각에 운동과 감각 관련 담당 피질들이 모여있는 걸 발견한 사람은 신경외과 의사였던 펜필드Penfield 인데요. 그는 살아있는 뇌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하여 결과를 보고 했습니다. 피질에는 고통을 느끼는 통각 수용기가 없기 때문에, 국소마취를 통해 머리 뚜껑을 열어서(^^;;) 대뇌 피질에 침들을 꽂고 전기적인 자극을 주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각각의 운동/ 감각피질 영역과 민감한 부분이 그만큼 더 넓은 피질을 차지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운동피질은 손가락과 입, 입술, 혀, 눈을 담당하는 부분의 피질이 넓고, 감각피질은 손과 혀 등이 넓은 것이죠.  그 비율을 본떠서 재구성한 인간 모형이 아래 사진입니다.








빨간 게 감각 호문쿨루스 모형이고, 파란게 운동 호문쿨루스 모형입니다.

 

 

여기에 누군가가 Homunculus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머리 속에 저렇게 웃기고 재밌게 생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의 기원이죠. '신체운동뇌도' '신체감각뇌도' 물론 이러한 표현도 맞긴 하지만 번역 과정에서 본래의 그 재치있는 은유는 사라져버린 듯 해서 개인적으론 아쉬운 느낌이네요. 아무튼 인지심리나 신경심리학에만 관련되어있을 것만 같은 저 모형이 임상심리와 과연 관련이 있을까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아이디어에 접점을 그리도록 해 준 것이 <호문쿨루스>라는 만화였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만화의 중요한 아이디어가 바로 여태 이야기했던 'Homunculus'죠. 기본적으로 '우리 머리 속의 Homunculus'는 저 사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민감한 감각기관이나 잘 돌아가는 운동기관이 조금 다를 수도 있고, 사고로 운동기관을 손실한 경우에는 피질영역의 감각뇌도에도 이상이 생기게 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누구나 대충 저런 모습의 '작은 인간'이 피질 속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만화에서는 그러한 '뇌 속의 작은 인간, 즉 호문쿨루스의 모습이 사람마다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모티브로 삼죠.


◆ 만화 <호문쿨루스> 내용

 <호문쿨루스>의 주인공은 '트리퍼네이션'이라는 뇌에 구멍을 내는 수술을 하게 되면서 일종의 육감에 눈을 뜨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된 '각각의 인간들에게 잠재된 호문쿨루스'를 눈으로 볼 수 있게된 것입니다.   

트리퍼네이션의 원리를 설명하는 중.. 
사실 여부는 회의적이지만 왠지 설득력은 있네요.


이 <호문쿨루스>라는 만화에서 이야기하는 '호문쿨루스'는
'무의식적으로 투영되는, 개인에 대한 요약된 자기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호문쿨루스'는 등장인물들 각자의 과거의 경험들과 약점, 내면의 본질 등이 함축된 결정체입니다. 만화는 그것이 외면화된 모습을 주인공이 볼 수 있게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죠.  

저는 이 만화를 보면서 그러한 아이디어가 뇌 속에 꽂히는 순간, 머리 속에서 갑자기 엔돌핀이 파도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더구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접한게 너무 놀랍고 즐거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의 '호문쿨루스'에는 각자 그러한 모습을 갖게된 배경, 이유가 있고 동시에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이 있습니다. 마치 임상심리학에서 말하는 내담자들의 '진단명'이나 '프로파일'처럼요. 무엇보다 '호문쿨루스'에는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처음 목격하게 되는 지나가는 '호문쿨루스'들.

저런 걸 정말 보게 된다면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아무래도 무섭울 것 같네요.



◆ <호문쿨루스> 따져보기

공상으로 가득찬 것 같아 보이는 이 만화가 현실적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요.단 '트리퍼네이션'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시술임은 분명합니다. 중세 유럽이나 중남미 문명 등 몇몇 문화권에서 이을 통해 '특별한 정신세계'를 이룩하거나 '정신치료'의 역할을 한다고 믿어졌던 것도 맞구요. 현재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하나의 치료법으로 취급되고 있다네요. (인터넷에 시술을 한 사람 이야기도 있습니다.물론 끔찍합니다 ^^;;)  ITAG라는 트리퍼네이션 보급 단체도 실존합니다. 그들은 트리퍼네이션이 현대의 항정신제 약물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트리퍼네이션보다 좋은게 없다고 주장하네요.

하지만 트리퍼네이션에 대한 신뢰성의 우려 역시 분명히 존재합니다. 첫째로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이기에 현실에서도 의사과학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신병동 환자에게 관장을 행하고 피를 뽑고 굶기고 손발톱이빨을 뽑고 잠을 안재우고 의자에 않혀놓고 미칠듯이 돌리던 그런 18c의 치료법이나 동종요법, 안수기도요법과 큰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두 번째로 트리퍼네이션은 너무 위험합니다. 요즘 누가 좀 우울하고 안절부절 못한다고 자기 뇌를 파내려고 하겠습니까? 누가 두개골에 구멍을 뚫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던 '로보토미'나 '가축취급 정신병동'처럼 트리퍼네이션 역시 정신과학의 흑역사 중 하나로 취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조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전혀 근거가 없는 '트리퍼네이션'과 달리, 사람들에게 뇌의 측두엽 특정 부위를 자극했을 때 '육감'이라고 칭해질만한 '영적 경험'을 한다는 것을 캐나다의 신경과학자 퍼싱거가 실험적으로 밝혀냈습니다.

원래 종교가 없었던 실험 참가자들은 그 부위의 자극을 통해 '어떠한 존재가 자신과 함께 있는 듯한'
'자신이 여태 느끼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 듯한' 경험을 했다고 보고하고 실험 후에 신앙을 가지게 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결과 해석에 대한 약간의 논쟁거리도 있습니다만, 과학적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트리퍼네이션보다는 신뢰가는 이야기죠.

그 이전에, 뇌 피질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경험을 바꿀 수 있다는 연구는 있었습니다. 펜필드의 실험이 사실상 그걸 증명했던 거구요. 그런데 영적 경험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으로 봐서, 현실에서 만화같은 '호문쿨루스'를 보게 되는 일은 어려울지 몰라도 최소한 그런 기분을 내는 일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게 망상이든 뭐든 말이죠.


◆ <호문쿨루스> 심리학으로 뒤져 보기

여태까지는 사실적인 정보 내용을 파악하고 신경심리학적 연구와 관련해 이야길 해보았는데요. 이미 말했듯이 실상 '호문쿨루스'들이 임상적으로 사용되는 진단과 프로파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과 함께 임상심리학적 관점으로도 이야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문쿨루스'들의 상징성은 마치 프로이트 정신분석에서 꿈을 해석할 때 사용하는 상징의 해석과 비견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에서는 꿈에서 나타나는 상징의 해석을 통해 내담자의 성적 무의식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죠.  

하지만 오히려 진단과 프로파일은 현재의 드러나는 증상과 행동 양상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것임에 비해서, 만화 속의 '호문쿨루스'는 쉽게 알아 볼 수 없는 미스터리 하긴 하지만 분명히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함축된 정보를 암시해준다는 점이 차이 같습니다.


또한 약간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이고 해석 자체가 환자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프로이트식 상징 해석과 달리 호문쿨루스는 분명히 실재하는 개인의 표상이면서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니 치료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인 것이죠. (물론 만화 속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이 만화 속에서는 실제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치료'가 행해지게 됩니다. 만화이기에 그 방법이 조금 과격해 보이고 판타지성도 있기는 하지만,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공부해보신 분들은 그 방법이 실제로는 '직면적'이고 '현실역동적'인 상담 치료에 가까운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관점에서는 아들러학파의 영향을 받은 방법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만화에서 처럼 자신도 이유를 모르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꼭꼭 감추려고 피하려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던 만큼, 감정의 덩어리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채로 자신도 모르게 고이 남아있게 됩니다. 그것이 직면을 통해 피하지 못하고 드러나게 된다면, 그로 인해 감당해야할 감정의 위력도 큽니다. 일단 파헤쳐져 버린 감정은 인간 내부에서 순식간에 퍼져버려서 자신이 깨닫기도 전에 어떤 식으로든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버립니다. 

한 번 눈물을 쏟기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가 없죠. 그 과정에서 이성은 별 역할을 못합니다. 한참 울고 나서야 왜 우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으려고 하죠. 그렇게 의미를 만들어 가는 거구요.

결국 <호문쿨루스>는 호문쿨루스를 볼 수 있게 된 주인공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또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약한 모습에 대해서 직면하게 되고 이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자기를 규정짓는 '호문쿨루스'의 틀을 깨고 '진짜 살아있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놀랍고 감동스럽지 않나요?

<사이코닥터>나 <어둠의 임상심리사> 같은 임상심리학 관련 만화를 전에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 만화들에서 다뤄지는 치료의 전형성과 비약성에 비해 오히려 SF같은 상상력을 지닌 이 만화가 훨씬 현실적이고 감동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사이코닥터>같은 경우, 선정적인 소재를 가지고 심리학과 정신분석에 대한 편견과 오해만 심어주는 만화라고 보거든요.)

이 만화가 현실적인 마지막 이유는, 실제로 Homunculus가 영속적인 것이 아니고 바뀌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신경과학자의 책인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실험실>을 보면 '환상사지'라는 희귀한 병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사고로 팔 다리를 잃은 후에도 팔 다리의 감각을 계속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팔다리가 멀쩡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어렵기에 일반적인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그들이 외상후 스트레스로 인한 해리증상이나 망상, 환각을 보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라마찬드란 박사는 이 환자들을 데리고 직접 연구를 했고, 그 결과 실제로 그 사람들의 뇌는 그러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지가 사라졌다고 해서 뇌의 피질 활성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특히 사지 절단으로 인해서 사용되지 않게 되는 뇌의 감각피질(팔 다리)은 점차 가까운 곳에 위치한 피질(코 입)과 동화되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원래 존재했었던 사지 감각(팔다리)과 새로 동화되는 감각(코나 입)이 혼선을 일으켰고 코나 입에 자극이 주어질 경우 아직 남아있는 팔다리의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는 거죠.

만약 그 사람의 대뇌 피질 감각 지도를 모형으로 만들어 본다면, 분명하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다른 연구에서도 음악가들의 뇌를 스캐닝했을 때 각 피질 영역의 차이가 발견됐는데요. 기타리스트들은 손가락에,  트롬본 연주자들은 입술에 더 많은 뉴런이 할당되어 있었답니다. 또한 지휘자들은 청각에 대해서 특수하게 발달되어 있었죠.

이처럼 뇌 안의 'Homunculus'는 실제로 삶의 과정에서 모습이 변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감각, 운동 뿐만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에 민감하거나 또는 반대로 '특정한 주제'에 약화된 누군가의 뇌가 있다면, 그 사람의 자기 표상은 그 사람이 가진 그 '특정한 주제'에 맞춰서 변형될 것임은 자명할 것입니다. 그게 꼭 만화와 같은 'Homunculus'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 마치며

Homunculus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기 표상, 즉 'self-image'를 가지고 있죠.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사람일 것이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물론 그런게 존재한다는 생리적이고 신경학적인 직접적 증거는 당장 없습니다만, 간접적으로 알 수는 있겠죠. 우울증이나 사회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실제 모습을 왜곡합니다. 자기 스스로 '난 정말 못 생겨서 남들이 싫어해'라고 생각하고 거울을 보기조차 싫어하죠. '자신이 못 생겼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 중에서 저는 정말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 약간 딴소리였나요..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 못하고 마무리하는 느낌입니다만...위의 배경 지식들과 만화의 감동이 교차되면서 결론적으로 저에게 전달된 아이디어는 이것이었습니다. 

"만약 'Homunculus'처럼 뇌 안에 자기를 비추는 '작은 인간' 같은 기제가 정말 있다면? "
 

"그리고 그것을 만화 내용처럼 어떤 방법으로 방법이야 어떻든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런 상상을 하게 해줬다는 것만으로 저는 이 <호문쿨루스>만화에 대해서 경탄해 마지 않습니다. 언젠가 신경과학과 인지과학이 발달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그런 날이 분명히 오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ps. <호문쿨루스>는 아직 완결이 되지 않은 만화입니다.
현재까지도 충분히 재미있었는데, 왠지 조만간 결론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더 기대중입니다.


Posted by feve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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